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그 새로운 의미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그 새로운 의미
  • 경남일보
  • 승인 2013.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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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내 몫이 될 수 없고, 그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과 질서를 지키며 성실하게 사는 것이 내 몫이라 여기며 사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가끔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를 할 때 투표용지에 빨간 도장을 찍는 그 1초의 뿌듯함을 정치에 반영할 뿐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政治)보다는 정치(情致·좋은 감정을 자아내는 흥치)에 관심이 더 많은 게 나다. 불혹을 이미 넘겼음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고, 한 아이의 엄마로 이 험한 세상에서 혼자 살 수 있도록 길러내는 일과 내게 맡겨진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만으로도 버겁고, 이젠 노후를 위해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할 숙제까지 있다 보니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세상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고, 내 성격상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직접 나설 용기도 없다. 이렇듯 정치는 내가 살아가는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해 주는 안전망으로서의 역할만 해주면 된다고 여기는 무지하기까지 한 사람이다.

하지만 작년에 처음으로 만 5세 보육비 20만원을 면제 받는다는 설렘으로 동사무소를 몇 번이나 들락거리고, 보육비 카드비가 따로 2만9000원이나 있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혼자 분노하고, 지방대학 교수 신분이 대학정책에 따라 취업률과 충원율 등으로 평가받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자라고 슬퍼하고,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의료비에 놀라고, 점점 줄어드는 내 통장잔고와 상승하는 물가 탓에 냉장고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깨끗해지고, 아파트 값은 점점 떨어지고, 연말정산을 통해 세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겠다고 발품을 팔는 내 삶을 들여다보면서 삶 구석구석에도 정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세상에 대해 실감을 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불만이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고, 한번 시작한 불만은 한도 끝도 없이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불만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또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것도 아닐 것인데 왜 이런 불만은 해결되지 않는지 그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들 하면서 왜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인지, 도대체 뭐가 변하지 않는 것인지, 누가 변하지 않아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인지 그에 대한 해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찾은 해답은 사람들은 정작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든, 내가 머물고 있는 직장이든, 가정이든, 내가 맡은 역할이든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또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변하기를 싫어하면서 남들은 당연히 변하기를 바란다. 그것도 간절히.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생각의 깊이가 깊어져야 하고,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하는 번거로움과 인내가 반드시 수반된다. 더욱이 생각이든 행동이든 이미 습득된 것이라면 그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어쩌면 바위에 구멍 뚫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읽은 최성애 박사 글에서 사람의 생각이 바뀌려면 21일을 계속적으로 그 생각만 해야 하고, 사람의 행동이 바뀌려면 100일을 계속적으로 반복해야만 변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한다는 것은 인내와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변화를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정작 그 변화를 자신이 하지는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은 계속적으로 변하고,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아 이 세상은 변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닐까? 사고를 전환하기를 두려워하고, 행동을 변화하기를 귀찮아한다면 여전히 우리는 보수(保守·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것)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進步)라는 것은 결국 변화를 위해 한 발자국 내딛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는 내가 어느 곳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언제든 오른쪽과 왼쪽은 바꿀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옳은 곳이 아니면 뒤돌아 설 수 있는 용기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것이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혼자 묵묵히 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정치가 아니더라도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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