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풍경…한운성 개인전
기억에 남은 풍경…한운성 개인전
  • 강민중
  • 승인 201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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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성(67)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명예교수는 몇 년 전 영국 남단의 브라이턴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를 초청한 현지 대학은 ‘올드 쉽(Old Ship) 호텔’이라는 곳에 방을 마련해줬는데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나무 바닥도 삐걱거리는, 언뜻 봐도 아주 낡은 호텔이었다.

2박 3일 체류하는 내내 그는 ‘주최 측이 나를 홀대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불쾌한 마음을 달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귀국 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 호텔이 실은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유서깊은 명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가는 그제야 자신이 사물이나 장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 외형만을 보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수년간 작업했던 ‘과일채집’ 시리즈를 버리고 지난 3년간 본격적으로 풍경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유명 관광지의 풍경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았는데 이를 다시 화폭에 옮겼다.

흥미로운 것은 카메라에 담긴 모습 중 기억에 남은 풍경은 방송용 세트장처럼 사실적으로 그려 배경과 분리시키고 그 이외의 풍경은 단색으로 처리해 마치 2개의 공간이 한 화면에 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렇게 그린 풍경화 24점을 오는 20일부터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열리는 개인전 ‘디지로그 랜드스케이프’(Digilog Landscape)에서 소개한다.

18일 낮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여행사 패키지 관광을 다니면서 느낀 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발에 불이 나도록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막상 돌아오면 사진에 남은 풍경들 이외엔 아무것도 머리에 남지 않았어요. 여행하면서 본 수많은 풍경은 어디로 가고 껍질만 남은 것이죠.”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놓치는 풍경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는 쏟아지지만 정작 전문 지식은 제대로 습득하지 못합니다. 학생들만 봐도 논문을 쓰는데 아날로그 방식으로 도서관을 뛰어다니는 대신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을 짜깁기하고 있어요. 이런 디지털과 아날로그 시대의 갈등을 표현하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그는 퇴임 전까지 1500여 점 정도를 그렸는데 앞으로 500점을 더 그려서 2000점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피카소는 평생 작품 2만 점을 남겼다는데 작가는 보통 전체 작품 수에서 한 10% 정도가 좋은 작품으로 남는 것 같아요. 나도 2000점 정도 그리면 마음에 드는 작품이 한 200점 정도는 남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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