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공포 '쓰레뜨' 언제 걷힐까?
소리 없는 공포 '쓰레뜨' 언제 걷힐까?
  • 경남일보
  • 승인 2013.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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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식 (경남도의원)
쓰레뜨. 우리 입에 착 달라붙는 명사이다. 우리와는 반세기를 같이해 온 인조돌판이다. ‘쓰레뜨’는 ‘슬레이트’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지붕과 천장, 내장, 외장 등에 사용되는 슬레이트는 쉽게 쪼개지는 점토질 변성암이다. 점판암이라고도 한다.

1960~70년대 정부의 권고사업으로 슬레이트 보급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보온성과 단열성이 우수해 인기가 좋았다. 다른 돌판에 비해 값이 저렴해 누구나 이 슬레이트를 애용했다. 이 슬레이트가 지금은 애물단지를 넘어 기피대상, 제거대상이 되었다. 바로 석면 성분 때문이다. 석면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87년 세계보건기구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고 이후 우리나라도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에 의거해 사용허가 유해물질에 석면을 포함시켰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 2009년부터서는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석면이 얼마나 위험할까. 호흡기를 통해 흡입됐을 경우 최대 40년의 잠복기를 거쳐 폐암과 악성중피종 등에 걸릴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 경남에서도 건축물 석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건축주는 조사를 실시한 후 관할 시장·군수에게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만약 석면 건축물로 판명이 난다면 이해 관계인에게 사실을 알리고 안전관리인을 지정해 6개월마다 석면자재 손상상태와 비산 가능성 등을 점검해야 한다. 석면비산 가능성이 높다면 관할 시장·군수는 석면 해체와 제거 등 조치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정부에서는 2011년 1월부터 석면피해 구제법을 시행해 석면 건강 피해자와 유족에게 의료비와 요양생활 수당, 조의금 등 구제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 현장도 바빠졌다. 특히 유·청소년들의 건강문제에 비상이 걸릴 수 있는 만큼 교육당국의 심도 있는 조사도 실시되고 있다. 경상남도 교육청은 2008년부터 ‘학교석면 실태조사와 관리 매뉴얼’에 따라 도내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등을 점검해 석면 의심학교를 가려내고 있다.

하지만 공공건물이든 다중이용시설이든 학교 현장이든 석면 문제에 따른 슬레이트 처리가 상당히 힘든 것이 현실이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데 실상은 관련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상남도의 슬레이트 처리 지원사업 추진현황을 보면 국·도비 지원비율과 시·군비 자부담 비율이 들쑥날쑥하고 있다. 2011년에는 국비 50%, 도비 15%, 시·군비 35%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국비 30%, 도비 21%, 시·군비 49%로 차이가 난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시·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농어촌의 슬레이트 집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그래서 하나같이 슬레이트 처리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고 지붕 개량사업을 하려면 주택 전체를 수리해야 하는데 어느 누가 나서겠냐며 하소연하고 있다. 실제로 슬레이트는 지정폐기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전문업체만 철거, 운반. 처리 등을 할 수 있다. 50㎡ 건축물 1동에 약 5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매년 20~30가구만이 슬레이트 지붕 개량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 지자체가 슬레이트 지붕 개량사업을 모두 마무리하는 데 100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슬레이트, 지정폐기물로 분류돼 있는 슬레이트가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국가경제가 어려운 탓에 예산이 부족하지만 정부는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도 지원규모를 늘려가야 할 것이다. 다행히 올해 슬레이트 처리 지원사업을 위해 경남에는 예년보다 10억 원 이상이 많은 18억 원의 국비가 지원되는 등 모두 4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올 한 해 1890동이 정비될 예정이다. 동당 지원액도 240만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소리 없는 공포를 안기고 있는 잿빛 쓰레뜨. 하루라도 빨리 싹 걷혔으면 좋겠다. 쓰레뜨 붐을 일으킨 계기가 새마을운동이었으니 이제 쓰레뜨를 역사의 뒤안길로 묻는 새로운 새마을운동에 우리 사회가 나서야 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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