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개인 신상 노출, 이대로 좋은가
인터넷 개인 신상 노출, 이대로 좋은가
  • 경남일보
  • 승인 2013.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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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얼마 전 진주와 사천에서 성폭력에 저항하다가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성폭력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사건을 또다시 접하면서 놀라고 아픈 마음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사건 이후 들려오는 소식은 이러한 마음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더 아프게 한다. 사건 이후, 진주 시내에 돌아다니는 소문에서 피해자는 자식 같은 남성과 놀아난 여성이 되어 있었고 인터넷에서는 가해자,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인터넷에서의 신상 노출은 스마트폰의 역할에 힘입어 많은 시민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그 하나는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아닌 밤중에 범죄로 인한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그런데 수많은 소문 속에서 피해자가 비난을 받는 것은 왜일까. 피해자에 대한 비난에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가 성폭력 범죄를 당했다면 우리는 거리낌 없이 그 가해자의 잘못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지만, 성인 여성이 그것도 자식 같은 나이의 남성 가해자에게 피해를 당했다면 피해자가 그 범죄를 유발한 책임이 있다는 우리의 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해 12월 성폭력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친고죄가 삭제되고 강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등 여러 가지 바람직한 변화가 있었지만 ‘협박과 폭행’이라는 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을 그대로 둔 것 또한 이러한 의식의 일단을 유지시키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심하게 저항해야만 성폭력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험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범죄의 책임 일부를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했음에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은 여전하다. 정숙하다고 사회가 인정하는 피해자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몇 십 년 전의 ‘보호받아야 할 성만 보호한다’는 낡은 판결을 떠올리게 한다. 범죄의 책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째로는 인터넷에서의 신상 노출이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신상 노출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 네티즌들의 자정노력도 있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건 관련자의 신상은 순식간에 노출되고, 요즘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더욱 쉽게 이러한 신상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범죄의 가해자는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큰 틀인 법 안에서 분노를 해소해야 한다. 법은 우리에게 사적인 복수를 금하고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법에 따른 처벌을 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분노하는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라 하더라도 법 안에서 그를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인터넷 상의 신상노출은 법적인 처벌보다는 여론으로 사형을 내리는 것과 같다. 범죄 가해자에 관해서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가해자의 가족과 피해자에 대해 신상을 노출시키는 것은 법적인 처벌도 여론재판도 아닌, 우리가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피해자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단죄할 수 없다. 그들이 받은 충격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단순한 호기심으로 또는 빗나간 정의감으로 그들의 신상을 털어서 공개하는 것은 우리 또한 그들을 가해하는 것이다. 2차가해인 셈이다.

성문제나 성폭력이 사건화되면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 문제에 과도하게 놀라고 과장되게 선정적으로 표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자 또는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의 고통과 인권에는 둔감한 경향이 있다. 민감해야 할 부분에서는 둔감하고 둔감해야 할 부분에서는 민감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두 부분을 뒤집어서 민감해야 할 부분에서 민감하게, 둔감해야 할 부분에서는 둔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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