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흙과 함께
봄 흙과 함께
  • 경남일보
  • 승인 2013.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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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아름다운 시선으로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땅을 보고 그리고 흙을 바라보고 흙을 만져보는 시기도 바로 지금이 아닌가. 대지의 꿈틀거림 속에 겨울잠을 깨고 눈을 부비는 모든 생명의 눈뜸, 지난해 철철 넘치던 검푸른 욕망의 녹음마저 잊게 했던 메마른 가지에 생명을 느끼게 하는 그 평범한 법칙도 흙이 있기 때문이다. 그 흙속에 담긴 생명들, 바람과 햇빛과 초목의 서정시를 스스로 찾아야 할 것 같다. 새 생명이 조용히 깨어날 때 흙속에 담겨진 그리움은 우리 모두의 설렘이고 추억이 아니던가.

봄을 느껴야 하는 우리 삶에 가장 완벽한 비밀을 가진 자연을 탐하는 마음을 어찌 사치나 욕심이라 하랴. 긴 겨울잠을 마음껏 자고 난 흙을 일구어 만지며 손으로 온몸으로 흙냄새가 배어들도록 하자. 부드럽고 촉촉한 흙을 손으로 주무르고 씨앗이나 모종을 심어보는 것도 얼마나 좋은가. 봄이 오는 황홀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향기로운 흙냄새도 맛볼 수 있어야 하고, 봄의 흙내음이 온 몸에 배어든 채 녹색마음 뿌려진 우리의 영혼에도 푸른 움이 트도록 해야 한다. 새싹을 살피는 순수의 눈이 되어 흙 속에 묻힌 씨앗이 움트고 자라나는 그 신비로운 경이(驚異)를 바라보자.

모든 것은 흙에서 태어나듯, 모든 생명 역시 흙에서 태어난다. “너는 본래 흙이니라. 그럼으로 흙으로 돌아가리라.”하는 건 우리 사람도 흙으로 빚어졌고,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닌가. 한 포기의 풀과 다를 바 없이 흙에서 생명을 받은 사람이니, 흙은 모든 생명의 고향이며, 우리의 살이며, 흙의 냄새는 살 속에 깃들인 영혼의 향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생명에 생명을 주며 생명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냄새가 바로 흙의 냄새가 아니랴. 이 봄날 흙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성스러운 향기로움까지 서리어 은은히 풍겨 나올 때. 우리는 자신의 봄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 봄날 아침 대지의 기운으로 생명을 키워내는 신비로운 힘과 젖내음을 품어내는 봄 흙을 일구어 만지면서, 몇 그루의 나무를 심어보자. 아침저녁 들며나며 물을 주고 보살피는 재미,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 궁색한대로 흙에 대한 애정으로 가까이 해보는 것이다. 신비로운 색의 조화와 더불어 다가오는 삶의 회복도 흙속이 아닌가. 봄 흙의 부드러운 감촉과 향기로운 냄새는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는데, 흙이 가져다주는 표현 불가능한 아름다움의 서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생명과 영혼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으랴.

계절의 변화란 평범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지겨운 일상에서 무디어진 감각을 다스려 주기에 얼마나 좋은 자극이 되는가. 이 봄날 나무를 심고 씨앗을 뿌려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목숨과 흙의 소중함을 알겠는가. 그러나 흙을 만지고 나무를 심어 본 사람은 결코 나무를 함부로 꺾진 않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비록 그늘져 어둑한 데가 있다 할지라도 새로운 봄빛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분단장을 하는 이 좋은 봄날 움트는 초목처럼 새로운 혼으로 다시 태어나 자신의 봄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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