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실 거실처럼
교장실 거실처럼
  • 경남일보
  • 승인 2013.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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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반성중학교 교장)
학교장이 되어 사무실을 갖게 되었다. 이른바 교장실이다. 나만의 생활공간을 갖는 것에 가슴 설레지만 생각거리가 많아진다. 태극기, 경남교육정책 등을 어느 위치에 어떤 순서로 부착해야 할까, 현황판은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 등등. 무엇보다 교장의 책상 배치가 선결과제이다. 어느 방향으로 자리를 잡을 것인가. 고심하여 책에서 사례를 조사했다.

소설 삼국지 ‘유비 한중왕 등극’에서 공명이 다시 간곡하게 권한다. “주공께서 형편에 따라 먼저 한중왕에 오르신 후에 황제께 표문을 올려도 늦지 않습니다.” 건안 24년(219) 7월의 일이었다. 단을 중심으로 다섯 방위에 정기와 의장을 세우고 모든 신하들이 각각 그 직위에 따라 늘어섰다. 허정과 법정이 유현덕을 모시고 단에 오르게 하여 면류관과 옥새를 바쳤다.

또 초한지 ‘홍문의 잔치’편에 유방은 항우 앞에 서게 되자마자 주변의 이목을 아랑곳 않고 땅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술자리에 이르러 항우와 항백은 동쪽으로 향해 앉고, 장량은 맞은편에서 서쪽을 향해 앉았다. 범증은 남쪽을 향해 앉고 유방은 그 맞은편에서 북쪽을 향해 앉았다. 당상이 따로 있지 않은 자리는 동쪽을 향하는 것이 가장 귀하다 하였으니 대강 그들의 자리매김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배석이었다. 그렇다면 교장 자리를 남향 또는 동쪽으로 보게 배치해야 하는가.

기관장에게 부임인사를 다녔다. 어느 교장실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벽에 천장 높이 서가에 가득 책이 꽂혀 있다. 중앙에는 책상을 길게 놓고 일간지 등에 게재된 학교관련 기사를 스크랩하여 진열했다.

교장 책상은 칸막이 건너 모서리에 자리하는데, 책상 위는 펼쳐 놓은 교육학 및 각종 자료로 수북하고, 주변 책장에 도서를 가득 꼽았고 넘치는 책과 유인물로 발 댈 공간조차 없다. 교장 명패는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라는 문구를 코팅한 종이에 반쯤 가려졌고 입구 벽에는 교육지표, 학생회 간부현황판, 협약서, 제6회 독서대상선발대회 최우수교사 대통령 상장, 감사패 등으로 장식됐다.

서가에는 베짱이 지혜독서, 청소년을 위한 생활예절, 혼불, 교장학의 이론과 실제, 민속문화의 생태학적 인식 등 다양한 책으로 채웠는데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듯이 교장실에서 책을 읽으며 학교장과 진로 및 꿈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겠다. 잘 보이는 곳에 ‘교장실을 찾은 여러분, 반납일은 기한이 없으나 양심적으로 반납’하라는 안내문과 도서대출대장이 비치되어 있다. 실로 교장실을 작은 도서관으로 꾸몄구나.

신선한 충격과 해답을 얻어 곧장 학교로 돌아왔다. 교사 연구실과 가까운 쪽으로 출입문을 잡고 방문객과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게 약간 사각지역에 책상을 배치했다. 의자 뒤 서가에 책을 채우고 입구 우측 벽은 학교역사 및 교육방향 등을 부착하며 좌측 벽에는 각종 지표를 정착했다. 중앙에 다과를 들며 협의할 수 있게 의자배치를 하여 ‘가족이 공유하는 거실’같은 공간이 되도록 꾸몄다.

앞으로 전교생이 학기당 한번 이상 교장실을 찾아 다도법도 실습하고 느낌 좋은 만남이 되도록 신선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야겠다.

/안명영·반성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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