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리더십
위기의 리더십
  • 경남일보
  • 승인 2013.04.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수필가)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의 갈리에티 대통령은 극심한 내정혼란의 돌파구로 당시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포클랜드를 침공한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로 있던 아르헨티나가 독립하면서 부속도서로 있었던 포클랜드제도의 연고권을 빌미로 삼은 것이다. 포클랜드가 아르헨티나에서 480km, 영국에서는 1만3000km나 떨어져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아르헨티나의 판단은 일응 승산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있었고 작전은 성공한 듯 보였다. 1000여명의 영국군을 축출하는데 성공했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을 지키기에는 공군력도 우세했다. 아르헨티나는 당시 세계 5대강국으로 손꼽혔으며 영국은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던 상황이었다.

갈리에티 대통령은 영국을 엘리자베스 여왕과 대처라는 여수상이 통치하는 유약하고 힘 없는 나라로 평가절하하며 전쟁의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오판이었다. 대처 수상은 “나는 패배의 가능성은 절대 믿지 않는다. 그런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즉각적인 전쟁선포에 나선다. 영국 함대는 자만에 빠져 있던 이르헨티나를 위협, 섬의 해안을 봉쇄했고 아르헨티나의 공군력은 맥도 못춰 단 한 대의 영국기도 격침시키지 못한 채 궤멸, 75일 만에 패퇴하고 말았다. 외교전에서도 영국은 우위였다. 명분이 있다고 믿었던 이르헨티나는 남미대륙에서조차 지지를 얻지 못해 고립되고 말았다.

대처 수상은 포클랜드전쟁을 계기로 영국병을 치유하고 최장기 수상이 됐다. 전쟁 당시 영국은 큰 정부에 일자리는 없고, 노력하지 않고, 복지수요는 많고, 세금은 치솟는 지독한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영제국이라는 과거의 영화는 온데간데없고 실질성장은 마이너스, 인플레이션 연 15%, 실업률 6%라는 경제적 위기마저 겹쳤다. 정치도 기득권의 반발과 반대로 대처 수상은 내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포클랜드전쟁은 영국병을 치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민들이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새 힘을 얻게 됐고 대처는 노조만능의 사회를 개혁하고 감세와 법치를 앞세운 신자유주의라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구, 영국이 다시 일어서는 전기를 마련했다. 오늘날 회자되는 대처리즘의 탄생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두고 영국이 국가적으로 애도하며 아쉬워하는 이유이다.

거슬러 올라가 1962년 쿠바사태를 들여다본다. 당시 소련의 후르시초프는 미국의 코앞에 있는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계획한다. 재래식 구무기를 수출하고 16척의 전단을 쿠바에 파견한다. 이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함정 183척, 군용기 1190여대를 동원, 쿠바해역을 봉쇄한다. 전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에 휩싸였고 케네디 대통령은 일전을 불사하며 소련의 퇴각을 촉구했다. 물론 미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결말은 소련함대의 철수로 1주일 만에 일단락됐다. 미국이 소련을 굴복시키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두 사건은 위기의 리더십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두 강대국 간의 파워게임에서 절대적 우위에 올라서 초강대국의 위치를 얻게 됐고 미국민들에게는 엄청난 자긍심을 심어줬다. 영국도 2류국가라는 패배감에서 자존심을 회복, 오늘날 유럽의 중심국가로, 세계를 움직이는 축으로, 이라크전에서 세계국으로 우뚝 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오늘날 한반도 정세는 위의 두 사례와 버금간다. 만약 북한이 도발을 해왔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카드가 무엇인가를 냉철히 판단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만약 프에블로호 납북사건이 있었을 때 미국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북한을 응징했더라면 한반도에서 힘의 우위와 전쟁의 위험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결코 지나침이 아닐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봉쇄한데 이어 남한내 외국인들의 철수를 요구하는 등 점점 남쪽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위기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국민적 단합도 그러하다. 분명한 것은 힘의 우위가 없이는 평화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쿠바사태를, 영국이 포클랜드전쟁을 소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대처 수상과 케네디 대통령의 리더십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