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도시 살리기
죽은 도시 살리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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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루르 지방은 독일의 중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라인강을 끼고 있는 도르트문트, 에센, 두이스부르크, 보훔, 겔젠키르헨 등의 도시들이 있는 지역이다. 이곳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은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지역 산업인 광산 및 중공업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켜 독일 경제를 단숨에 재활시킨 신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약 140개의 탄광회사들이 운영되고 있었고 전체 탄광 노동자 수가 50만 명에 육박 할 정도였다. 하지만 산업 및 에너지 구도가 바뀌면서 1980년대부터는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고 잘 나갔던 도시들에는 검정색의 황폐한 채탄장과 공장 철탑들이 유산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하나 둘 씩 떠나갔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이주함으로 도시 전체에 심각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주 정부와 지자체는 죽어가는 도시를 다시 살리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졸퍼라인인데, 원래 하루에 12,000톤이나 생산하던 유럽최대의 탄광이었다. 이는 ‘루르의 대성당’이라 불릴 만큼 그 위용을 떨치고 있었고 독일 산업의 최고 상징이자 자존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도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폐광의 사양길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에 주 정부는 1989년에 ‘엠셔파크 복원 사업’을 확정하고 황폐한 산업시설과 도시환경을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재생하는 대담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졸퍼라인 리모델링은 바로 이 사업의 핵심 중 하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탄광 등의 공장시설물을 폐기하거나 철거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를 산업전통으로 간주하여 계승시킬 뿐 아니라 문화시설로 변모시킨 점이다. 이로써 과거의 유산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창의적 문화 환경을 만들었다. 즉, 과거에 석탄을 실어 나르던 컨베이어 벨트는 문화를 옮겨가는 도구로, 코크스 공장의 냉각수는 시민의 아이스 링크 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또한 물건을 생산하던 공장에서는 각종 문화행사나 예술품 전시 등이 끊임없이 이어져 예술을 탄생시키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심지어 이를 통해 탄광은 2002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까지도 이루게 된다. 이곳 뿐 아니라 전체 루르지방은 생태와 관련된 첨단 문화도시 및 산업지구로 변신하게 되었고 다시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로 재탄생하였다.

이에 비해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 했던 우리의 석탄 산업도시 태백, 정선, 영월 등은 산업유산을 없애버림으로써 이를 새로운 미래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실패하였다. 그 결과 오늘 날까지 도시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에서 간혹 들려오는 소식은 그 곳의 카지노에서 돈을 잃고 패가망신하여 심지어 생명까지도 스스로 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지역도 동일한 길을 걸어 온 것만 같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과거 지역 경제의 구심점 중에 하나였던 마산의 한일합성자리에는 과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과거 진주의 산업과 경제를 이끌었던 대동공업이 떠난 자리도 역시 아무 색깔 없는 회색빛 아파트 단지가 수 십 년 째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루르지방 뿐 만 아니라 유럽의 대부분 선진국들은 1980년대에 도시 및 지역 재생사업을 앞 다투어 시행하여 도시 및 국가 경쟁력을 높이며 경제를 소생시켰다. 늦은 감이 있기는 하나 우리 새 정부도 핵심 건설 사업으로 도시 및 지역 재생을 지목하고 나선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 지자체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진주의 경우만 해도 혁신도시나 신역세권 등이 기존의 도심을 위협하고 있어 공동화 된 구도심의 재생사업은 매우 절실한 것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재생은 깨끗이 다 철거해버리는 것이 아니고 전통과 유산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고도의 기술임을 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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