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발언 배경 '뿌리깊은 침략 부인론'
아베 총리 발언 배경 '뿌리깊은 침략 부인론'
  • 연합뉴스
  • 승인 2013.04.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거론하며 난데없이 “침략에 대한 정의는 확실하지 않다”는 말을 꺼냈다. 아베 총리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일본이 무라야마 담화에서 사죄한 ‘침략’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 담화에서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의 길로 나아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 제국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줬다’고 반성했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여기서 ‘침략’이 사실은 ‘태평양전쟁’이 아니라 ‘중일전쟁’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해석은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 1995년 전후 일본의 권력 구조와 관련이 있다.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내각은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부였다.

당시 자민당은 주류파(오부치파·현재의 누카가파)와 비주류파(세이와카이·현재의 마치무라파)로 갈려 있었다. 주류파의 생각이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와 중국 침략은 잘못했지만,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은 자위 자존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것이라면 비주류파 중 일부는 ‘중일전쟁도 침략전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주류파에 속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도 무라야마 내각의 통산산업상으로 있을 때나 이후 총리에 취임한 뒤 조선과 중국에는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태평양전쟁의 침략성을 애써 부정했다. 사회당이 이런 자민당 주류파의 동의를 받아 발표한 것이 무라야마 담화인 만큼 여기서 침략은 사실상 중일전쟁을 가리킨다는 게 와다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아베 총리는 당시 오쿠노 세이스케(奧野誠亮) 등 자민당 내 비주류 강경파 의원들이 1994년 12월에 결성한 ‘전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의 사무국장 대리였다.

이 의원연맹은 일본의 침략 전쟁은 ‘일본의 자위 자존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며 무라야마 담화 발표에 극렬히 반대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출발점이 ‘전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실제로 주장하고 싶은 건 ‘중일전쟁도 침략이 아니었다’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이같은 발언을 통해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

그는 지난 2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우리나라가 과거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제국 사람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인식에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과 같다”고 밝힌 적이 있다. 무라야마 담화 중에서 ‘국가 정책을 그르치고 침략을 했다’는 부분만 쏙 빼놓은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아베 총리가 전쟁의 ‘결과’로 여러 국가에 큰 피해를 줬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전쟁의 ‘의도’ 자체는 아시아 각국을 미국, 유럽 등 서구 열강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는 추측이 나온다.

본인은 ‘미래 지향의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하지만 숨은 뜻은 일본이 과거 전쟁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대동아공영권’과 그리 다르지 않은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