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기억을 남기는 여행
소중한 기억을 남기는 여행
  • 경남일보
  • 승인 2013.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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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준 (지리산고교 교사)
여행이란 것은 누구나에게 소중한 기억을 남긴다. 나의 삶속에서도 수많은 여행이 있었지만,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된 여행은 작년에 학생들과 함께 간 제주도 수학여행이었다. 그 여행이 가장 소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불편함’이라는 단어와 동행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학생들과 함께 떠났던 2박 3일간의 수학여행은 이제까지 내가 겪은 여행 중 가장 ‘불편한’ 여행이었다. 일상생활이 불편하신 중증장애인분들과 1:1로 매칭이 되어서 제주도로 향했기 때문이다.

평소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강조하는 교장선생님의 뜻에 따라 우리 학생들은 해인사 자비원과 연계가 되어서 이런 특별한 수학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분명 많은 것들을 학생들이 배우고 느낄 것이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 이상으로 이 여행은 나와 학생들에게 큰 의미를 남겼다. 해인사 자비원 또한 일상생활에서 거동조차 힘든 이들을 비행기까지 태워서 제주도까지 보낼 생각을 한 것은 아마 자비원에게도 대단한 모험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간단한 이동부터 식사, 관람, 세면, 취침 모든 것들이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교사인 나도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1:1로 매칭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 우리 반 학생들은 오죽했으랴. 하지만 그 ‘불편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뇌병변 1급 장애를 지닌 ㅇㅇ씨와 매치된 우리반 ㅇㅇ학생은 팔과 다리를 제대로 펼 수조차 없는 ㅇㅇ씨를 이동때마다 안아올리고 내렸으며, 강직이 오는 다리를 꽉잡고 편안하게 해드리려 온 힘을 다했다. 또 화장실에도 같이 가서 소변통도 직접 대주었다. 평소에 워낙 불평 한마디 없는 묵묵하고 착한 학생이었지만, 이 학생이 너무 힘들어 할까봐 덜컥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 듯 “선생님, 이 형이 제가 뭐하나 도와 줄 때마다 너무 많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해서 제가 오히려 더 미안해요”라는 말을 하며 날 보고 웃어보일 때 가슴이 눈물로 꽉 메어졌다.

또 40대 장애인 부부와 매치된 ㅇㅇ가 나를 보며 “선생님 이분들은 20년 동안 사시면서 아직까지 신혼여행을 못 가보셨대요. 지금 이 두 분이 함께하는 첫 여행이시래요. 선생님 제가 지금 이분들의 평생의 꿈을 이뤄드리고 있는거 같아요.” 정말 그랬다. 이 학생이 짊어진 불편함의 대가는 누군가에게 있어 ‘평생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 학생은 느낄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반 학생 모두도 아마 같은 마음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2012년 중증장애인분들과 함께한 여행은 너무도 소중한 여행이었다. 중증장애인분들과 학생들이 그 둘을 가르던 ‘불편함’ 이라는 장애를 넘어 서로를 아끼고 함께 호흡했기 때문이다. 함께함으로써 극복했던 그 ‘불편함’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그 어떤 편안함보다도 홀가분한 가벼움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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