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생일선물
생애 첫 생일선물
  • 경남일보
  • 승인 2013.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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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남 (사천대방초교 교사)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부자지간, 사제지간, 부부지간에 나눌 편지와 선물을 준비하면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되찾는 시간이다. 어버이날·스승의 날을 맞아 부모님과 선생님께 전하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며, 표현하면 할수록 더욱 빛나서 주변을 환하게 밝혀 준다.

5월은 우리에게 아스라이 멀어져 간 추억을 되살려주고, 잊었던 얼굴들을 떠올려주며 해후의 감격도 안겨준다. 제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기쁨도 크지만 스승님들께 감사편지를 쓰고 함께 담소를 나누며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은 특별한 선물을 안겨준다. 스승님들이 우리에게 심어주고자 애쓰셨던 홍익인간의 이념과 봉사의 의미를 30여년의 교단생활을 한 지금에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부모가 아닌 자녀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니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조금씩 보인다.

우리 반에는 아빠나 엄마와 헤어져 사는 아이들이 재적수의 30%나 된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아버지 단어를 사용할 때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할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인데 우리 반 아이들이 스승의 날, 용돈 1000원씩을 모아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한명도 빠짐없이 18명 모두가 정성스레 쓴 편지를 읽으니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맺혔다. 외할아버지와 사는 한 아이는 스승의 날 편지를 두통이나 주더니 이튿날 샛노란 필통 속에 ‘어른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면 예쁜 옷과 브로치를 사 드릴게요. 그러니 몸 건강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라는 편지를 넣어서 책상 위에 놓고는 부끄러운 듯 제자리로 돌아갔다.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사는 한 여학생은 이모집에서 매일 조개 까는 것을 돕고 용돈을 받는데 선생님 건강이 걱정된다며 그 돈으로 비타민을 샀으니 받아주라는 어머니 전화를 아침에 받았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께 드리라고 돌려 보냈는데 이튿날 어머니 것도 샀다며 다시 가져왔다. 편지는 기쁘게 받지만 선물은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의 빚이 생겨 받기가 어렵다. 예상치도 못한 고민으로 갈등하다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이구동성으로 받아야 한다고 외쳐서 아이들의 고마운 마음을 받기로 했다.

5월 16일, 점심을 먹고 급식소를 나서는데 교감선생님이 여학생들을 보고 4학년이지만 몸이 성장했으니 속옷을 갖추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무심함에 부끄럽기도 하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방과 후 속옷이 필요한 여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예쁜 것으로 골라 주었다. 마침 그날이 내게 비타민을 준 아이의 생일인데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생일선물이에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말을 듣는 내 가슴에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이 번져 나갔다. 한꺼번에 다 데리고 갈 수 없어 당장 필요한 아이들 것만 해결해 주었더니 나머지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다음에 모두 다 해 주리라 마음먹어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연휴를 보내고 월요일 교실에 들어서니 환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들과 함께 일기장 속에 빼곡히 쓰인 글 옷을 입은 아이들 마음이 나를 반겨주며 무겁던 마음을 새처럼 가볍게 날려 주었다. ‘선생님이 오늘 주신 것은 옷이 아니라 추억을 주신 것 같다.’

/서외남·사천대방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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