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환 (시골을 사랑하는 시인)
어디든 좋다. 걸어서 가보자. 걸어서 가면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만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은 바로 여유다. 여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걸어서 가보면 자유와 행복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두 시간 걷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은 긴 시간을 걸어서 가보자. 마음 딱 잡고 열 시간 정도 걸어보자. 두 시간 정도 걷고 나면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여섯 시간 쯤 걷고 나면 몸과 마음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그러다 여덟 시간 쯤 걷고 나면 몸과 마음이 완전히 분리가 된다. 이때는 머리에 든 모든 것이 텅 비어 버린다. 즉 열반의 상태에 이른다.
나는 달리기도 하지만 걷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휴일날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질 때 걸어서 간다. 주로 차가 다니지 않는 둑길이나 산길을 걸어서 간다. 내가 사는 의령읍에서 고향마을까지는 도로로 가면 거리가 16km다. 차로 가면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서 갈 때는 차로 가지만 그냥 어머니가 계시는 집에 들르러 갈 때는 한번씩 걸어서 간다. 특히 둑길과 산길을 이어서 차가 다니지 않는 길로 간다. 그렇게 가면 5시간 쯤 걸린다. 지금까지 연초나 또는 봄과 가을에 몇 차례 걸은 적이 있다.
나는 여름휴가도 걸어서 가는 휴가를 보낸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것이 2008년이다. 그때 처음으로 걸었는데 2박 3일 동안 의령군 관내 101km를 걸었다. 그 다음 해에는 역시 의령군 관내로 정하고 4박 5일 동안 132km를 걸었다. 2010년과 2011년은 지리산 둘레길을 각각 4박 5일 걸었고, 지난해에는 통영시 우도와 욕지도 등 3박 4일간 섬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가는 휴가에는 의령 사랑의 집 김일주 원장과 가족들, 해바라기 쉼자리 박정연 소장과 직원, 가족들 그리고 나의 가족과 아이들의 친구들이 함께한다. 처음엔 10명 정도 단출하게 시작했는데 이제는 자원봉사자도 함께해서 30명 정도 된다. 시작할 때는 나의 아들과 함께 그냥 걸어서 가는 동행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그것이 아예 여름휴가가 되어 버렸다.
자연과 교감을 나누며 천천히 느리게 걸어가다 보면 모든 것을 누리게 된다. 걸어서 가다보면 넉넉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스스로 주인공이 된다. 바로 세상을 지배한 듯한 기분에 이른다. 올해도 더운 여름날 그들과 함께 지리산으로 간다. 4박 5일간 둘레길을 걸을 것이다. 지리산의 혼과 향기를 품고 작은 여유를 누릴 것이다. /시골을 사랑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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