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준 (동명고등학교 교감)
학교도 복지정책의 유탄을 피해 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뜨거웠던 무상 논쟁을 거치면서 급식문제는 해결된 듯하나 과도한 급식비 지원으로 교구 구입비나 시설비는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학교 현장은 황폐한데, 벗겨진 페인트칠과 노후화된 책걸상과 컴퓨터가 대표적인 학교의 풍경이 되었다. 학교의 복지제도 일환인 소외계층 자녀들에게 지원되는 20가지가 넘는 혜택은 그렇다하더라도 면 단위에 소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유층 자녀들이 대부분인 특수목적고 학생들에게 전액 지원하는 급식비, 형편이 좋음에도 한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그 집 자녀에게 지원되는 여러 혜택들, 미국시민권자와 결혼하여 사는 가정도 다문화가정이라 하여 모든 것이 면제되는 제도가 과연 합리적인 복지정책인가를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될 시점이다.
태어나기만 하면 지원되는 양육비나 일정 연세가 되면 지급되는 ‘국민행복연금’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성장의 동력이자 경제발전의 근간이 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과 산업분야와 농식품, 해양수산분야에서의 예산 삭감을 통한 무상복지의 실효성이 얼마나 클지 궁금한데, 이런 면에서 참봉 박헌경의 구휼사업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100년 전 서부 경남에 살았던 오천석지기 사업가 참봉 박헌경(朴憲慶)은 빈민 구휼에 힘써 온 분으로 평소에도 제방정비와 도로확장, 사찰 건립 등에 많은 주민들을 동원하고 그들에게 식량과 현금을 지급했었지만 그가 시행한 용호정원(龍湖庭園) 조성은 합리적인 구휼사업의 대표이다.
참봉 박헌경은 1922년에 거듭된 재해로 많은 주민들이 기근으로 허덕이고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지금의 취로사업 형식으로 인근 주민들을 동원하여 용호정원(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소재, 문화재자료 제176호)을 조성했다. 정확한 구휼 금액은 알 수 없으나 남녀노소가 모두 동원되어 그 역할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힘 있는 남자들은 돌과 흙짐을 져 나른 횟수에 따라 현금이 지급되었고, 부녀자·노약자·어린이들은 취사나 업무보조를 통해 식사와 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참으로 현명한 빈민 구휼사업이었다. 그러기에 이 용호정원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9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선택적 복지사업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공짜는 없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주지시켜 자립과 자긍 의식을 배양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나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선진국이고 복지정책이 잘 시행된다는 호주에서는 연금 수혜자도 일정 시간 사회체육시설에서 운동하지 않으면 연금도 차등 지급한다고 한다. 공짜는 어디에도 없어야 한다. 국민에게 거지근성을 배양하지 않으려면.
문형준 (동명고등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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