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대수냐, 고구마 사랑에 이랑이 짧다
멧돼지가 대수냐, 고구마 사랑에 이랑이 짧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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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고구마심기와 모내기
미루고 미루어 왔던 고구마 순을 붙였다. 지난주 많은 비가 내린 후 땅이 어느 정도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고구마 심을 밭을 갈아 검은 비닐을 씌워 두었다. 고구마는 조직배양으로 키운 묘에서 뿌리를 잘라내고 줄기와 잎이 붙은 채로 땅에 잎 두 장 정도가 묻히도록 깊게 심었다.

고구마를 심는 것을 두고 여러 번 망설였다. 고구마는 멧돼지가 좋아하는 먹이로 뿌리가 들기 시작하면 야음을 틈타 산에서 내려와 밭을 온통 뒤집어 놓는다고 들었다. 특히 고구마 밭이 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거나 인가와 먼 곳이면 예외 없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고구마를 심고는 싶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마 재배에 특별히 관심을 보여 온 집사람의 제안으로 인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텃밭에 심어보기로 합의를 봤다.

아버지께서는 텃밭에 지금 고구마를 심으면 김장채소를 파종 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꼭 심고 싶으면 두어 두둑 심어 줄기나 따먹고 맛이나 보도록 하란다. 맞는 말씀이다. 지금 심으면 빨라야 9월 말에나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집사람이 고구마 순 무침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설득하자 일은 싶게 풀렸다. 멧돼지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김장채소 재배할 곳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로 하고 고구마는 텃밭에 심기로 결정했다.

고구마 순도 재래시장에서 사다 빨리 심자는 것을 내가 좋은 품종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잘 아는 지인이 고구마 순을 키우고 있어 연락을 했더니 여유가 있다며 텃밭에 심을 양만큼 주겠다고 한다.

주말에 고구마 순이 준비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가져와 해거름이 내리면 심으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반기며 먼저 심어 보겠다며 순을 잘라 들고 나섰다. 옛날에 고되게 했던 일이 지겨울 법도 한데 오랜만에 해보는 고구마 심는 일이 하고 싶으신가 보다. 온 가족이 어머니를 따라 고구마 밭으로 나섰다. 하지만 몸이 온전치 못한 어머니는 한 이랑을 겨우 채우시고는 힘들다며 손을 놓으셨다. 땅바닥에 허리를 굽히고 해야 하는 일이니 몸에 부담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고구마 순을 붙이는 일을 마치고 나니 한 낮을 지난 햇살이지만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허리가 시원찮은 집사람도 하고 싶은 일을 마쳐서인지 허리 아프다는 말을 내뱉지 않는다.

절기상으로 5일이 망종(芒種)이었다. 햇보리를 먹을 수 있었던 망종 무렵이면 농사일도 절정이다. 보리를 수확하고 이어 모를 내어야 했다. 일 년 중 제일 바쁜 시기로 얼마나 바빴으면 ‘발등에 오줌 싼다’고 하고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말이 있었을까. 밭을 갈아 콩 심고 깨 심는 때이기도 하다.

무논에 모를 심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모심는 일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내는 기계를 가진 사람이 해주겠다고 해야 가능하다. 우리같이 6~7마지기 천수답에 농사를 짓는 사람은 목을 매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연락을 받고 써레질을 하느라 물을 가득 채워 두었던 논에 모가 뜨지 않도록 물을 조절했다. 모심기가 끝나면 물을 다시 채워야 하기에 고장 난 양수기를 새로 사 바꾸어 달았다. 어머니께서는 양수기 값을 물으시며 배부터 배꼽이 더 크겠다며 농사 지어봐야 헛수고만 한다고 나무랐다. 논농사 보다는 내년부터 매실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서 성능 좋은 새 양수기가 필요하다며 설득했다.

모를 심어 주겠다고 약속한 날 기다려도 모심는 기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인은 전화도 받지 않는다.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하루 종일 눈과 귀는 벼논에 머물러 있었다.

다행이 다음날 일찍 나타났다. 막상 모심기를 시작하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흩어진 논을 찾아 여기저기 세 곳을 이동하면서 일을 해야 하니 반듯한 들 논에 비하여 능률이 떨어져 미안하기도 하다. 이동하는 중간에 있는 논 주인이 와서 심어 달라고 부탁을 하면 들어줄 수밖에 없어 정작 기계를 부른 우리 논에 일을 마치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모르는 분도 아니고 남도 아닌 집안 어른들로 한두 마지기 벼농사로 식량이나 하자고 그래도 면적이 넓은 우리를 따라 늘 일을 해왔다.

벼논에 모를 심고 나니 큰 고비를 하나 넘긴 기분이다. 남의 손을 빌려서 하는 일이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모심는 일을 마쳤으니 매실 수확을 준비해야 한다.

다음 주부터 시작할 매실 수확을 위하여 선별기를 바꾸었다. 가지고 있던 선별기는 구형으로 선별이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헌 기계를 되사가는 조건으로 구입했다.

/정찬효 시민기자
고구마 심기
고구마를 심고 있다.
모내기
무논에 모내기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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