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쫓아다닌 나비, 이젠 든든한 밑천"
"평생 쫓아다닌 나비, 이젠 든든한 밑천"
  • 임명진
  • 승인 2013.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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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블루오션 곤충산업]3.백유현 사천 '나비마을' 대표

 

 

 

“나비가 왜 좋냐구요. 그냥 좋습니다. 평생을 쫒아 다녔지만 이상하게 질리지가 않네요. 하하”


사천시 사천읍 장전리 306번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나비마을 농장. 300평 남짓의 그리 크지 않은 이곳은 나비아빠, 백유현(50·나비마을 대표)씨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백씨는 나비사육 농가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함평 나비축제에도 참여했다.

곤충을 소재로 한 축제가 사실상 전무했던 당시로서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나비축제는 전국 지자체에서 여는 축제로는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당시 군수님과 인연이 있었는데 나비 축제를 한번 해보자고 하니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막상 반응이 너무 좋아서 얼떨떨 했습니다. 나비 세팅하고 기획하고, 고생도 많이 했지요(웃음)”


사천시 축동면의 한 농가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백씨는 유독 나비라면 사죽을 못썼다. 너울 거리면서 날아가는 지천에 깔린 나비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단다.


뜰채를 들고서 들판으로 산으로 나비를 찾아 다녔다. 적지 않은 나이에 본 막내아들이 틈만나면 나비만 찾아 다니니 부모님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농고를 거쳐 경상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해서도 나비사랑은 계속 됐다. 나비를 채집하러 지리산을 이잡듯이 뒤집고 다녔다. 길다란 뜰채를 들고 다니기 불편해 형들이 쓰는 낚시대를 가져다가 뜰채로 만들어 형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강원도 철원에 있는 전방부대에 입대한 그는 사열도중에 나비가 날아다니면 그걸 잡는다고 연병장을 뛰어 다녔고, 고참이 되고 나서는 틈만 나면 부대 뒤 야산에 올라가 돌아다니는 바람에 인근 옆 부대에서 5분 대기조가 거동 수상자로 오인해 출동하는 대형사고도 저질렀다.

 

 


자연스레 ‘나비에 미친 놈’이라는 별명도 따라 붙었다. “그러고 보면 나비가 저와는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어찌보면 아찔한 순간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운이 있어서 잘 넘어갔던 거죠(웃음)”


열혈 나비인생에 대한 보답일까. 지금은 나비 사육농가로 연간 억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배움에 대한 궁금증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있다.


“2002년도에 일본에서 나비전시회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솔직히 충격을 받았어요. 1943년에 잡힌 ‘유리창나비’라는 특이한 나비가 전시돼 있는데, 설명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채집을 했더라고요. 일본 사람들이 싸그리 채집해 간거죠. 우리는 그 나비가 있는 지도 몰랐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 토종 나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고 그걸 연구하고 보존해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현재 국내 나비 종류는 어림잡아 200여 종이 넘는다, 이중 백씨가 사육하는 나비 수는 배추흰나비, 암끝검은표범나비 등 20~30여 종. “나비는 종류별로 사육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먹이도 다르고요. 그만큼 어려운게 나비입니다”


연간 10여 차례의 나비 전시회를 열고 있는 그는 벌어들이는 수익을 고스란히 재투자한다. 백씨는 나비 외에도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흰점박이꽃무지 등을 사육하고 있다.


그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넓적사슴벌레는 일본 수출까지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는 나방유충 중에서 참깨잎만 먹는 탈박가시 나방 유충을 민물고기 미끼용으로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백씨는 “아직까지 우리 인식은 곤충하면 체험학습 등의 행사용 밖에 쓸모가 없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곤충을 식용 뿐만 아니라 연계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대나무축제로 유명한 담양군이 대를 갖고 죽염도 만들고 죽순 요리 등으로 관련 산업을 자꾸 개발해 꾸준히 대나무가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백씨는 곤충자연생태박물관을 건립하는 꿈을 갖고 있다. 아직은 꿈에 불과하지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나비를 찾아 들판을 뛰어다니던 까까머리 소년에서 이제는 50세의 중년이 되어버린 백씨의 나비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곤충은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냐는 고스란히 우리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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