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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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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6: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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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4)
<15>지리산문학관, 그 곁가지 이야기 
 
국군 11사단 9연대 통역장교 이영희 교수의 진주 기생집 사건을 지금 이야기 하는 중이다. 연대장 오익경 대령은 한 번씩 전투 참가 전후에 사기진작 차원에서 연대 휘하 장교들을 술집으로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이날도 통역장교 이영희는 연대장 옆에 앉아 연대장의 말벗이 되어 주었다. 진주기생들이 모인 자리라 하지만 전시라 20여명 장교들 파트너로 모운 권번들로는 인원이 모자라 비권번 파트너도 몇이 섞였다. 이영희와 연대장에게는 비교적 나이가 든 기생이 파트너로 앉았다. 장교들은 오랜만에 분내 나는 여자들 앞에서 주량껏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영희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대했기 때문에 술 먹는 요령이나 술집 분위기에 전혀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무공해 애숭이었다. 한참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여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 취기가 오를 때 여자보고 이 자리가 끝나면 우리 어디 따로 가자고 했는데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전투지에서는 위관 장교도 마치 장군 행세를 했었는데 그때 그 파트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가물거리지만 어쨌든 이영희로서는 약속이 철통같이 잡힌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화가 난 이영희 애숭이 술꾼은 집이 어딘지 대충 알아보고는 지프차를 몰고 쫓아갔다. 남강가 절벽에 보잘것 없는 초가집을 찾아내고 싸리문을 다소곳이 열고 들어갔다.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조용히 나오라 해도 나오지 않아 괘씸하다고 여긴 이영희는 조금 소리를 높여서 나오라 했다. 그래도 안나오자 “약속을 해놓고 왜 아무말도 없이 사라지는 거야.”라고 큰 소리로 따지니까 그때서야 돌쩌귀 소리가 나더니 창호지문이 삐걱하며 열렸다. 서너 자 높이 돌축대 위 툇마루에 나와 선 여자는 아무 말도 않고 이영희를 내려다보면서 미동도 않았다. 마침 그때가 보름날이라 중천에 뜬 달이 교교한 빛을 여자의 정면으로 내리비추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달빛을 받고 서 있는 여인은 형용할 수 없이 고고한 모습이었다.

차츰 이영희는 그 여자에게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과의 위상이 역전되는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지경이었다. 술이 확 깨어버릴 것같은 그런 정도가 되었다. 보잘 것 없는 기생, 그저 술 따르는 여자가 아니라 위엄에 싸인 존재의 기에 압도된 이영희는 순간 허리에 찬 권총을 빼들고 마당 밖으로 한 발을 쏘았다. 적막한 밤에 그 소리는 남강 위로 멀리 메아리로 퍼져 나갔다. 그러고는 여자를 향해 내려오라고 소릴 질렀다. 당시 지리산의 빨치산 토벌에 나선 위수사령부 장교라면 소위 계급장만 달아도 이순신 장군쯤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는 시대였다. 게다가 총도 한 발 쐈으니, 여자가 논개가 아닌 바에야 버선발로 내려와 무릎 꿇고 살려달라 빌 줄 알았다.

그런데 기생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판국에도 자세 하나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조용히 버티고 서서 이영희를 내려다 보면서 훈계를 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을 총으로 겁을 줘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실망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비이성적인 행동에 따르지 않습니다. 진주기생은 장교님처럼 그런 위협으로 어디로든 따라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국가 위기의 전시가 아닙니까?”

이영희는 그 훈계에 기가 죽어버렸다. 대학을 막 나온 22세의 순진한 청년은 심정 속에 있는 순수의 불꽃이 점화된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왜소한 인간이란 말이냐. 보잘 것 없는 술집 여자라고 업신여긴 상대방의 그 당당한 기백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위대한가!” 이영희는 순간 그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기생에게 큰절을 하고 깊이 사죄한다는 말을 남기고 지프차를 타고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이영희는 이 사건으로 인간에게는 도덕적인 크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이영희에게는 이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세 가지 일 중에 하나라고 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필자는 ‘참 진주 기생’의 한 일화를 추가할 수 있는 보석 같은 자료로 빛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논개 다음 ‘산홍’의 기백과 진주기생의 전통을 떠올리며 모처럼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이영희 통역장교의 이야기는 그들이 연회를 가졌던 진주 수정동 술집이 개천예술제 백일장 후의 외부심사위원 회식 자리의 분위기가 겹치는 것으로 여긴 필자가 곁가지로 떠올린 일화다. 다음에는 지리산 문학관 이야기로 복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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