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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5)<16>지리산 인산문학상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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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6: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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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55)
<16>지리산 인산문학상 기타 
 
지난 글에는 이영희(1929-2010)교수의 청년통역관 시절의 진주 기생집 회식사건을 틈새 이야기로 넣었다. 이는 진주문인협회 전사무국장 김석규 시인 이야기와 겹치는 ‘회식 장소’에서 있었던 일화를 추적한 것이었다.

김석규 다음으로 지리산문학관이 주는 ‘지리산 인산문학상’을 받은 시인은 노향림이다. 노향림은 1942년 전남 해남군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데뷔했다. 시집에는 ‘눈이 오지 않는 나라’,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 등이 있다. 노시인은 진주화요문학회 ‘이달의 시인’ 행사에 초대된 바 있다. 독자와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부군 홍신선(동국대 명예교수) 시인에 얽힌 이야기다. 연애할 때는 동인활동을 하던 때인데 홍시인이 “노향림씨. 나하고 결혼해 주면 이상적인 시인 커플로서의 활동공간을 마련해 주겠어요. 마당엔 넓은 정원을 꾸며 새가 날아와 노래하게 하고 노시인의 서재는 특별 공간으로 확보해 드리겠어요.” 이렇게 감언이설이 길었는데 “지금 나는 부엌에서 시를 쓰고 있어요.” 라며 부부관계를 설명하자 진주학생수련관 다목적홀에 모인 사람들은 폭소로 호응해 주었다.

홍시인은 필자와 동국대 국문과 입학동기인데 필자 동기들을 전후한 2,3년 간격의 출신 시인들의 내외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 정기 회원으로 노향림시인과 홍시인이 회원 가입이 되어 있다. 필자는 가평 모임때 단 한 번 참석한 일이 있다. 그때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 문효치서재에서 나를 재워준 친구 문 시인은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며 이 신 신고 하루를 보내자고 강권하여 가평 산야의 수려함을 확인했다. 이날 노향림 시인과 함께 참석한 시인들은 문효치, 박제천, 홍신선, 정의홍, 신용선, 홍희표, 하덕조 등이었다.

노시인이 지리산 인산문학상을 받은 시는 ‘겨울 헬리곱터’다. “지리산 칠선계곡/ 거친 눈보라 속을 나는 헬리곱터는/ 몇 시간 동안 지상과 통신이 두절된다./ 날짐승과 들짐승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겹겹이 쌓인 눈 헤집고 사투를 벌이는 이들은/ 사료와 낟알 수십톤씩을 공중에서 뿌려가며/ 먹이를 다 줄 때까지 교신을 끊는다.”(전반부) 이 시는 지리산 계곡을 돌며 짐승의 먹이를 살포하는 헬리곱터 승무원들의 자연애에 대해 조용 조용 노래하고 있다. 지리산은 그 골짜기도 깊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신도 결코 얕지 않다는 점을 짚어주는 시다. 다음은 계간 시지 ‘시인수첩’ 2013년 봄호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노향림 시인의 길잡이 시인은 김종삼 시인이었다. 의미 없이 사물이나 감각에 경도되는 시인, 그의 지침을 일찍이 받았다. 김시인은 좀 소외되고 외톨이가 되어야 시는 더 잘써지고 시인의 본래 모습은 꼭 그래야 한다는 점을 노시인에게 심어 주었다. 노시인은 “등이 구부정하고 늘 소외된 듯 혼자서 광화문 거리를 걸어가시던 분, 간암으로 돌아가실 때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도 죽는다는 사실이, 돌아가실 때까지 소주를 드셨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노 시인 자신에게도 의사가 조심하라는 경고를 주었다고 말한다. “얼마전 대학병원 의사는 떨리는 내 손을 붙잡고 수전증일 수 있고 더 악화된 병으로 갈 수 있습니다.”라 했다는 것이다. “나는 돌아오는 길 내내 무하마드 알리의 얼굴만 떠올랐어요. 그는 비록 권투로 얻어맞았지만 나는 시를 쓴 죄밖에 없는데 시에게 몇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지요.”

그날 시인은 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서울시내를 연속해서 도는 순환전철을 탔고 순환점을 다 돌고, 두 번이나 돌아도 시인은 내리지 않았다. 아니 내릴 수 없었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여전히 세 바퀴째 돌았다. 만원인 지하철 속에서 노인들은 왜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생각하며 하나같이 약봉지를 들고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노향림 시인은 고해성사와 같은 병 이야기를 하고 나니 조금은 시원해 졌다고 말한다.

시인은 다시 말한다. “시가 오히려 내 불치의 병이고 내 망명정부다. 세상에서 갈 곳 없어도 시는 언제나 나를 받아주지 않던가. 내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할 병이라면 시밖에 더 있겠어. 하고 나를 위로한다.” 이를 듣는 이들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시인은 어쩌다 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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