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곤 (의령군 낙서면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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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경우 도시와 비교해 현대문명의 혜택이 보다 미약하기 때문에 욕구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를 좇아 대도시에 집중돼 있겠는가. 현상이 이렇다 보니 조금은 과장 같지만 농촌 주민의 행정수요 욕구에 대한 만족도 역시 끝이 없을 정도다. 가령 어느 특정 마을에 주민 편의시설을 설치하면 그것은 곧 다른 마을에도 설치해야 된다는 전제가 된다. 다만 시설 설치의 선·후만 있을 뿐 돈이 없어 못해 준다는 말은 곧장 예산타령의 핑계만 될 뿐이다. 왜냐하면 ‘다른 마을은 되는데 우리 마을은 왜 안 되는가’라는 마을간 자존심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면사무소 업무 중 이런 일은 아주 기본이다.
가족 간의 사소한 말다툼이 있을 때나 주민끼리 작은 의견충돌이 있을 때도 면사무소를 찾아온다. 이런 경우 면사무소가 행정관서이기도 하지만 영락없이 쌍방 다툼을 중재할 법원이 되기도 한다. 어디 그 뿐이랴. 어느 누구 집 아이 취직문제를 같이 걱정하는 것은 물론 또 누구의 아들이 고시에 합격이라도 하는 날이면 같이 노래하고 춤사위를 벌이는 놀이문화의 전당이 되기도 한다. 반면 누군가 잔뜩 화가 났거나 고민이 있으면 풀어줘야 하는 인생 상담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면사무소를 작은 정부종합청사라 일컬어도 큰 무리는 없을 듯싶다.
좀 과장된 표현 같지만 면사무소에 오래도록 근무하는 공무원은 마을주민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어느 집 누구의 동태는 물론 심지어 부엌에 놓인 숟가락 숫자까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면사무소 업무 중 가장 힘든 게 바로 규제업무이다. 공무원의 정당한 책무는 엄정한 법 집행이 우선이지만 솔직히 말해 주민이 법규를 어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먼저 안면이 부셔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위반사항을 그냥 보고 넘길 수도 없다. 이때부터 서로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한 수단이 동원된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주민이 법을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더구나 면사무소는 이처럼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비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출생에서 사망신고까지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을 지고 있는 관공서이기에 가히 작은 지방정부청사라고 필자 나름대로 단정 지어본 것이다.
/김영곤 (의령군 낙서면장, 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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