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관말직 史官의 直筆
미관말직 史官의 直筆
  • 경남일보
  • 승인 2013.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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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고문)
조선시대에 사관(史官)은 역사의 초고(草稿)를 쓰던 관원 즉 후세에 전할 기록을 쓰는 관직자를 말한다. 사관의 전속관원인 수찬(修撰:정7품)·주부(注簿:정8품)·검열(檢閱:정9품) 각 2명이다. 초기의 사관은 곧고 까다롭기로 유명, 임금도 감히 건들지 못한 그 덕분에 객관적인 역사기록의 서술이 가능했다. 조선의 왕은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쥐고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던 왕조시대였던 만큼 왕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사관은 삼장지재(三長之才)인 재(才:역사 서술 능력), 학(學:광범한 역사 지식), 식(識:현실을 올바로 직시하고 시비포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사들이었다.

▶사관들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춘추필법이 번득이고 있음이 발견된다. 사관들은 왕과 대신들의 언행에 직필을 휘둘렀다. 왕에게 올바른 간언을 못하고 비위를 맞추는 대신들이 있으면 사관들은 가차 없이 “종기를 빨고 치질을 핥아가며 아첨하는 무리”라고 서슴지 않고 비판했다.

▶현재도 청와대에 조선시대의 사관과 비슷한 ‘통치사료 담당관’이 있지만 문제는 이들이 대통령과 고위 각료들의 언행, 정책 입안 과정에서 오간 극비사항들을 기록할 수 있는 권한이 조선시대의 사관에 비하면 거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재임 중의 기록들을 국가 공문서로 보관하지 않고 개인 소장물로 가지고 나간다는 데 있다.

▶사관들은 때로는 탄압을 받아가면서도 직필(直筆)과 직언(直言)을 기록해 놓았다. 직필 정신은 자신들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쥔 임금도 피해가지 않았다. 사관은 그 직급이 비록 미관말직(微官末職)이지만 담당한 직무가 매우 중했다. 요즘 NLL 시비를 보면 ‘통치사료 담당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수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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