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고 보니
여행을 가고 보니
  • 경남일보
  • 승인 2013.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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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반성중학교 교장)
“어, 저게 아닌데, 이상하다. 아하 그렇구나.” 이런 탄성은 여행 중에 종종 터져 나온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만남에서 상식과 지식의 사이를 넘나들게 하며 생각을 확산시키는 여정이다.

중국 항주, 뒷사람에 밀리고 앞 사람에 막혀 북새통을 이루는 화항공원이 있다. 남송 때 윤승은 화가산 아래에서 화원을 조성하여 화초를 재배하고 물을 끌어들여 호수를 만들어 오색어를 기르면서 감상하였는데 찾는 이 많아 공원이 되었다.

이곳을 찾은 강희제는 노니는 물고기를 보고 붓을 들어 화항관어(花港觀魚)로 쓰고 오석에 세로로 새겼다. 명필이다. 황제로서 바쁜 일정에 어떻게 저런 글씨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맨 아래 글자에 눈길이 모아진다. 魚자는 불 화로 마무리되어야 하는 데 점 세 개를 찍었다. 황제의 실수였단 말인가. 어색한 분위기를 기다렸다는 듯 안내자는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지 어찌 불 위에서 살게 하겠는가’ 하며 ‘…’(삼수변)을 썼다고 한다. 황제의 물고기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려 얼마나 만졌는지 획이 뭉개졌다. 무심코 지나치던 여행자도 돌아와 만지고 간다.

중국 공부의 공묘 앞에 자공이 심었다는 ‘해’나무가 고사되어 밑동만 있다. 그 앞에 석비를 볼 수 있는데 子貢手植楷로 새겼다. 植자는 木과 直의 합성인데 目을 어색한 日로 하였다. 의아해하자, 해설자는 공자 제자 삼천 명이 스승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렀는데 유독 외직에 나가 있던 자공이 빠져 그의 몫으로 ‘一’자 만큼의 여백을 남겼다고 한다. 밀려드는 관람객은 그 부분을 오랫동안 보고 만져본다.

중국 제남시내에 대명호가 있다. 입구 패방에는 청대의 서예가 서전의 大明湖라는 멋들어진 초서체의 편액이 높이 걸려 있다. 그런데 明자는 ‘目月’으로 되었다. 당대의 유명한 서예가로서 오기했는가. 아니면 당시는 청나라 시대라 明자를 사용할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란 말인가.

이를 알게 하는 예가 있다. ‘열하일기’에 연암 박지원은 한족인 혹정 왕민호와 필담을 많이 나누었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때 이미 날이 저물어 방안이 침침하였으므로 촛불을 켜놓았다. 나는,

不須人間費膏燭(인간의 촛불이란 켤 것이 무엇 있나)

雙懸日月照乾坤(해와 달 두 빛이 천지를 쌍으로 밝혀다오)

하고 읊었다. 혹정은 손을 흔들면서 먹으로 ‘쌍현일월’(雙懸日月)이란 네 글자를 지워 버렸으니 대개 일·월을 쌍으로 쓰면 明자가 되어 만주족에 의해 붕괴된 명왕조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明자가 무슨 죄가 있다고?〉라고 하였다.

일본 규슈에 이 지역을 다스리고 외교를 담당하며 관청의 역할을 했던 다자이후 유적이 있다. 신축 시기는 백촌강 전투에 패전하여 왜로 망명한 백제유민들의 기술을 이용한 7세기 중엽이다. 여기를 찾아보니 잡초 속에 주춧돌만 자리하고 있다.

금송 기둥을 받쳤을 주춧돌은 당시의 번영을 알고나 있을까. 아, 물시계를 만들어 백제 복원을 위하여 촌음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던 백제 의자왕 여동생 제명여제의 꿈은 풍우에 씻긴 돌무더기로 되었구나. 훗날 세운 기념비에 明治를 ‘目月 治’로, 天明을 ‘天目月’으로 새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빛은 프리즘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자는 여행으로 스펙트럼 되는가.

안명영 (반성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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