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미를 잃은 연예병사 제도
존재의 의미를 잃은 연예병사 제도
  • 경남일보
  • 승인 2013.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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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경남과기대신문사 편집국장)
몇 년 전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306 육군 보충대로 들어서던 날이 떠오른다. 훈련소를 거쳐 자대 생활까지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같은 처지의 선·후임들과 서로 ‘동병상련’의 감정을 주고받으며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의무라는 다소 형식적인 의미 아래 자신을 위로했고, 그렇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전역 후에 국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제법 높아져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TV와 인터넷 뉴스에서 현역으로 입대한다는 연예인들의 기사가 잦아졌다. 자칫 군 입대가 연예인들의 이미지 마케팅 수단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 직업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 방송사에서 국군홍보지원대 소속의 연예병사들의 행태를 보도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현역으로 복무중인 병사들이 모텔에서 투숙을 하고 사복을 입는 것도 모자라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게다가 일부 병사들은 새벽 시간에 지정된 숙소를 이탈하여 거리를 활보하였고, 또 몇몇은 안마시술소를 출입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연예병사 제도를 폐지하라는 여론의 거센 뭇매와 함께 국방부는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게 되었다. 외부와의 접촉이 많은 연예병사에 대한 특혜, 군 기강 논란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지만 도저히 일반 사병이라고는 볼 수 없는 그들의 행태에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병사들에게 각자의 병과와 특기가 있듯이, 연예병사 역시 대중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직종의 특징을 살려 국군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일부 특혜 논란을 감수하고서도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방송을 본 후에 ‘내가 생각했던 특혜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미 제대한 연예 병사들의 휴가, 외박일수가 일반사병들의 4배 이상이라는 글을 읽고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일반사병들보다 바깥세상 구경이 잦고, 외부 음식이나 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고, 훈련이나 내무생활과 같은 고된 일과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정도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특혜는 사실 일반사병들이 국토의 전후방에서 늦은 밤과 새벽까지 철책선과 해안을 경계할 시간에 불법 안마시술소에 출입하고, 일반사병들이 가족과 친구, 연인의 편지나 전화 한통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때 휴대폰으로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늦은 밤 일반사병들이 내무실에 누워 가족들의 얼굴을 그리며 눈물을 흘릴 시간에 사복차림으로 밤거리를 배회하는 정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그리고 전국의 예비역들만이 아닌 바로 전 국민이다. 기강 해이를 넘어선 행태를 보여준 해당 연예 병사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예방하지 못하고 방치한 군 내부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 진정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명예로운 국군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창설된 국군홍보지원대의 연예병사 제도의 본 의미를 되새기고, 국민들의 정서에 따른 존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주형 (경남과기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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