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시의 효용성
막말과 시의 효용성
  • 경남일보
  • 승인 2013.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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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 동명고 교감)
이 작은 나라에서 한쪽에선 물난리를 치르고 한쪽에선 폭염에 허덕거린다. 이런 날이면 불쾌지수가 더욱 높아져 개인적으로도 갈등 심화나 다툼을 유발할 수 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말에서 비롯된다. 그런가 하면 이런 날에도 좋은 말 한두 마디가 높은 습도에서 오는 불쾌감이나 무더위를 싹 가시게 만들기도 한다.

서울의 중견 건축사무소 소장인 한 후배가 SNS에 올린 글을 보면 하루가 즐거워진다. 가령 ‘비오는 날 한옥의 처마는 마치 우산 대신 덮어주던 엄마의 치마폭 같이 따뜻했다’거나 ‘“아유~ 고마워라.” 꼬부랑 할머니가 짐수레에 당신보다 더 큰 짐을 싣고 전철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문이 열리자 어느 젊은 처자가 짐수레를 얼른 잡고 내린다. 귀여운 할머니, 고맙다는 말투에 애교가 철철 넘친다’고 쓰거나 ‘청개구리 한마리가 시멘트 블록 위에 있길래 풀섶을 찾아주려고 데리고 와서 잠시 같이 있는 동안 한 컷, 이쁘죠!’ 이런 식이다. 그의 눈에는 늘 아름다운 정경이나 풍광만 보이는 모양이고, 그것을 표현한 몇 자 글을 읽으면 읽는 이의 마음도 즐거워진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가장 험한 논평을 내는 나라는 북한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는 모르겠지만 남한에 대해서만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들을 쏟아낸다. ‘괴뢰보수패당’이라는 말은 기본이고 ‘애당초 살아남아 후회할 놈’에서 ‘리명박 역도’나 ‘요사스런 언행과 황당한 궤변으로 우리를 심히 자극하며 대결 광기를 부려온 박근혜’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런 말들에서 국격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제1야당도 막말에서 뒤지지 않는다. 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이 참으로 시끄러웠고, 상임고문의 ‘중앙정보부’ 발언과 ‘늦게 빼니까’라는 한 의원의 성희롱 발언에 지난 대선 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한 시인의 절필 선언도 논쟁의 중심에 있다.

국어교사 시절, 그 시인의 시를 공부하면서 학생들에게 ‘무릇 시는 이러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나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진다. 그가 작년 대선 과정에서 쏟아낸 많은 말들을 들으면서 내 귀를 의심했고, 아! 같은 물도 양(羊)이 마시면 젖이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됨도 느꼈었다. 시인은 절필을 선언하며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않고 발표하지 않겠다. 맹세한다”고 했고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게 괴롭다”고도 했다.

과연 시가 그렇게 무용한 것일까. 시사(詩史)에서 최초로 효용성을 강조한 공자는 ‘시를 읽으면 사악한 마음을 없앤다’(詩三百 一言以蔽之曰 思無邪)고 했다. 설령 시인의 말대로 나라가 어렵다고 쳐도 ‘국가의 불행이 시인의 행복’(國家不幸 詩人幸)이라는 조익의 시구를 떠올리면 시는 결코 무용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한 트윗에서 ‘시인의 정신은 성스런 곳을 향해 열려 있고 시인의 발은 이 천박한 세속을 떠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말뿐, 그는 시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것 같고 정신도 황폐하고 발은 시궁창에 담그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말은 부메랑과 같아 남을 해치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를 해친다. 해인해기(害人害己)다.

문형준 (진주 동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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