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새 소설…환상의 숲이 달래주는 허기
조해진 새 소설…환상의 숲이 달래주는 허기
  • 연합뉴스
  • 승인 201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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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편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출간
수백 개 정사각형 조각 거울과 여덟 개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부착된 18층 건물 로비에 하얀 투피스를 입은 여자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있다. 깔끔한 차림이지만 여자는 빌딩 안내인 ‘미수’고 남자는 보안 요원 ‘윤’이다.

둘은 5개월 정도 사귀다 헤어졌다. 알 만한 대학을 나오고도 보안요원이 된 남자의 부끄러움을 여자가 봐 버렸다.

“내가 왜 자신을 피하는지 미수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다만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가까운 사람에게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던 패배자의 진짜 얼굴을 그녀는 보았고 알아 버렸다.”(105쪽)

조해진의 장편 ‘아무도 보지 못한 숲’에서 이번엔 남자가 여자의 감춰진 얼굴을 본다. ‘세상의 모든 습기를 빨아들일 듯한 검은 습지(濕地) 같은 얼굴’(148쪽)이다.

미수에겐 어릴 적 없어진 남동생 현수가 있다. 빚쟁이에 쫓기는 엄마는 남매를 할머니에게 맡겨버렸다. 소녀였던 미수는 아무도 몰래 남동생에게 젖을 물리며 마음 깊은 곳의 허기를 달랜다.

남동생은 보험금이라도 받아 엄마 빚을 청산하려는 어른들의 잔인한 계획에 가스폭발 사고의 사망자로 위장돼 폭력조직에 팔려간다. 세상에 없는 존재가 돼 버린 남동생은 서류 위조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세 인물 모두 몸통 어딘가가 뜯겨나간 사람들이다. 가로세로가 몇 걸음에 끝나는 크기인 미수의 원룸과 윤의 옥탑방, 그리고 누나를 찾아 몰래 같은 건물에 입주한 남동생의 원룸엔 이들 각자의 고통과 외로움이 배어 있다.

미수가 도시 한가운데를 걸어갈 때 미수에게만 보이는 숲이 나타난다. 이때 ‘세상의 모든 시계가 작동을 멈추면서 눈앞의 풍경은 정지 상태가 되고 소리는 증발한다’(9쪽).

소설은 숲에서 시작돼 현실로 나아갔다가 숲에서 끝난다. 작가는 아픈 인물들에게 제목 그대로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을 열어줘 현실의 상처와 허기를 달래게 한다.

민음사가 선보이는 경장편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첫 번째 작품이다.

192쪽. 1만2천원.

/연합뉴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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