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비방이 난무하는 사회
막말과 비방이 난무하는 사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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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곽금주 교수는 “막말을 해놓고 ‘말로 했지, 내가 무슨 피해를 줬느냐’는 식으로 합리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말도 충분히 폭력적일 수 있는데 그것을 의식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막말을 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신체폭력에 대한 잣대를 피한답시고 말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를 빗댄 말이다. 언어폭력의 사례는 관민을 가리지 않고 노소도 가리지 않는다.

누구는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의 후손)라는 막말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에게 치명타를 날린다. 어떤 이는 진주의료원 폐업조치를 ‘유대인 학살’에 비유한다. 한때 국무총리를 지낸 분은 “박정희가 누구이고, 누구한테 죽었나? 박씨 집안은 안기부, 정보부와 그렇게 인연이 질긴가? 이제 끊어 달라”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전임 대통령을 개구리나 쥐에 비유해 놀려댔다. 정치적인 패러디라든가 저항의 표현이라면 모르겠으나 이건 개인의 외모, 외형에 대한 단순한 비방이다. 이런 치졸한 비방들이 정치권에서만 자행되겠는가. 우리사회 일반이 그런 모습이다. 세 치 혀끝에서 일어나는 사회병리현상이라 할까.

연암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을 보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고위벼슬아치의 두 형제가 있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누구의 벼슬길을 막는 문제를 두고 논의했다. 곁에서 말없이 듣던 어머니가 연유를 물었다. “네, 어머니. 그 사람의 선대에 과부가 있었다고 해서 바깥 말이 많습니다”라고 아들이 답했다. 이에 어머니는 “규방일을 사람들이 어찌 알겠느냐? 바람은 소리만 있지 형체는 없다. 어찌 형상 없는 일로 남을 논하느냐? 하물며 너희도 과부의 자식이 아니냐? 과부의 자식이 과부를 논한단 말이냐?” 형제는 그만 무참해져서 의론을 거두었다. 박지원은 이 고사를 취문성뢰(聚蚊成雷)로 소개하고 있다. ‘풍문에 현혹되어 판을 그르친다’는 뜻이다.

중산정왕전(中山靖王傳)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뭇사람의 입김에 산이 떠내려가고, 모기소리가 모여 우레가 된다. 패거리를 지으니 범을 때려잡고, 열 사내가 작당하자 쇠공이가 휜다.” 중산정왕이 자신을 참소하는 말에 대해 천자 앞에 해명하며 한 얘기다.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동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한 청년이 마을사람들에게 랍비(유대교의 율법학자)를 중상모략하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후회감이 들어 청년은 랍비에게 용서를 구했고, 사죄를 위해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노라고 빌었다. 랍비는 청년에게 “새의 깃털로 속을 넣은 베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베개를 잘라서 깃털을 바람에 날려 보내라고 지시했다. 청년은 시킨 대로 한 다음 랍비에게 찾아와 “이제 제 죄가 용서되었습니까?”하고 물었다. 랍비는 말했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네, 가서 깃털을 모두 주워오게나.”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바람에 다 날려 가버렸기 때문이다. 청년은 자기가 한 말로 인해 끼쳐진 피해를 회복시킨다는 것이 날아 가버린 새 깃털을 모으는 것만큼 어려운 것인 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근거 없는 비방은 사람을 잡는다. 바람처럼 왔다가 비처럼 사라지니 찾아도 자취가 없고, 살펴도 형체가 없다. 한번 두 번 듣다보면 정말 그런가 싶다. 세 번 들으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난다. 그러나 비방을 당한 사람은 오래 고통을 받는다. 참회하는 도둑은 훔친 돈을 되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살인자는 진심으로 후회한다 하더라도 죽은 자의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다.

막말이란 대화의 토대가 일방화된 사회에서 벌어지기 마련이다. 시장사회에서는 시장이 대화의 토대이고, 계획사회에서는 계획이 대화의 토대다. 남성중심사회에서는 남성이 대화의 토대고, 도시중심사회에서는 도시가 대화의 토대다. 대화의 토대를 일방적으로 만든 사회에서 강자나 약자 모두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여 막말을 마구 해대는 것이다. 대화의 토대를 빼앗은 자들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소통방식과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한다. 언어폭력도 습관성이 있으며 점차 강도가 세지는 특성이 있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언어폭력이 큰 폭력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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