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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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이루어낸 ‘월트 디즈니’
1955년에 개장한 LA 근교의 디즈니랜드에 만족하지 못한 월트 디즈니는 새로운 비전으로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디즈니랜드의 100배가 넘는 세계최대 규모의 테마파크인 월트 디즈니월드의 건설에 착수한다. 그러나 1971년 개장을 5년 앞둔 1966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디즈니월드의 성대한 개장식에서 한 인사가 부인 릴리 디즈니 여사에게 월트디즈니 씨가 이 경이롭고 환상적인 테마파크의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다고 하자,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이는 이미 디즈니월드의 모습을 살아생전에 마음의 눈으로 생생하게 보시고 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벌써 그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체를 똑똑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그리며 열정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20세기가 막 시작된 190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디즈니가 4살 무렵이던 시절에는 그의 부모가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미주리 주의 한 작은 농촌 마을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 월트 디즈니는 이 시기를 자신의 생애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로 회상하곤 하였는데 사실 그의 작품 속에 그려진 목가적 풍경들은 모두가 이 시기의 체험과 그리움 속에서 얻어낸 영감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 시기부터 월트 디즈니는 그림 그리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는 아들이 그림 그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옆집에 사는 한 은퇴 의사는 그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 의사의 칭찬과 격려는 그의 생애에 처음으로 맛보는 기쁨이기도 했지만 월트 디즈니로 하여금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창작자 되도록 동기 유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그리 길지 않았던 시골생활을 끝내고 다시 캔자스시티로 나오게 되었다. 신문배달을 하고 집안을 돕느라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던 월트 디즈니는 아버지의 마지못한 허락을 간신히 받아내어 캔자스 예술 디자인 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학교 신문에 삽화를 그리며 청소년기를 보내던 중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나이 미달로 군 지원 입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미국 적십자사 운전 요원으로 1년 간 프랑스와 독일 전선에서 복무하게 된다. 복무를 마친 월트 디즈니는 상업광고 제작사의 도안사로 일하게 되면서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월트 디즈니는 이 회사 생활을 통하여 평생의 친구이면서 동업자였던 동갑내기 어브 아이윅스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조그만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만화 상업광고를 만드는가 하면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호응을 얻기는 했으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데다가 시장이 좁다보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형 로이 디즈니가 서부로 가서 할리우드에 발을 들여 놓게 되고 월트 디즈니는 캔자스에 만든 필름들을 들고 여러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다. 열정으로 넘치던 월트 디즈니는 천신만고 끝에 워너브라더스와 인연을 맺게 되고 자신들의 스튜디오가 번창 하는 듯 했으나 배급업자에게 기만당하고 이용당하고 만다. 월트 디즈니가 뉴욕에서 배반당하고 할리우드로 돌아오는 길에 쓴 짧은 시나리오부터 탄생하게 된 캐릭터가 바로 미키 마우스였다. 미키 마우스가 월트 디즈니사의 간판스타로 활약하는 동안 갖가지 애니메이션의 실험제작을 통하여 대중들로부터 각광과 찬사를 받기 시작한다. 그래서 탄생한 캐릭터들이 바로 도날드 덕, 플루토, 구피 등이다. 그리고 1933년에 내놓은 ‘아기 돼지 삼형제’는 세계대공항으로 고통 받던 미국 국민들에 크나큰 위안을 주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1937년에 공개한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의 대박으로 월트 디즈니사는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나자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월트 디즈니는 소위 선하고 깨끗하고 미국적인 즐거움을 미국인과 세계인에게 안겨주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가 떠난 지 이미 40년이 지났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궁리하고,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피하지 않으며, 일단 마음먹은 일은 불굴의 의지로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던 월트 디즈니의 인생 역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월트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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