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길선 (진주시의원)
서울시는 2010년 한시적으로만 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진주 고유의 축제인 진주유등축제를 서울시의 이름으로 지속시키겠다고 한다. 안 그래도 심각한 중앙과 지방의 격차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겠다는 고육지책으로 키워 왔던 지역축제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도둑 맞아 버렸다. 한 해 예산만 20조가 넘어가는 초대형 지자체 서울, 일천사십만 서울 시민수의 3%가 조금 넘는 34만에 불과한 진주시 입장에서 이 같은 갑의 횡포에 그저 가슴을 치며 눈물만 흘리고 있다.
지역 입장에서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며 피눈물을 흘려 키워낸 지역축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피땀 흘려 만들어낸 것을 날름 베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한다? 정말 피가 거꾸로 솟을 노릇이다.
1949년 개천예술제 유등대회에서부터 이어져온 진주 유등축제는 진주시민들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검증을 통해 역사적으로 가치 있으면서도 대중이 좋아하는 방식들을 발굴해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성장시킨 진주의 보물이다. 단순히 우리만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니라 2006년부터 5년 연속 최우수 축제,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되었으며 심지어 2011년에는 세계축제협회로부터 금상 3개와 동상 1개를 수상한 명실상부 세계적인 축제이다.
이 같은 영예는 단순히 유등을 이용한 아이템만의 가치로 얻은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전투 때 군사적 신호와 안부 전달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우리 민족의 가슴 시린 역사와 결부된 가치까지 함께 평가된 진주 고유의 축제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캐나다 윈터루드 축제와 나이아가라 빛 축제, 미국 LA한인축제로 수출할 때도 다름 아닌 ‘진주유등축제’라는 타이틀로 수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일류도시를 지향한다는 서울시가 진주유등축제를 그대로 베낀 축제를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니 정말 외관만 일류지 정신만큼은 삼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에 항의하는 진주시에게 한다는 말이 ‘상생(相生)’하는 차원에서 그저 참아 달란다. 그래 상생하겠다는 사람이 그 먼 길을 찾아 올라간 지자체장을 문전박대하고 비겁하게 뒤에서 친한 언론들만 불러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나?
지난 7월 31일 뙤약볕에서 진주시민의 간절한 목소리를 담은 피켓을 들고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서울시민의 의로운 양심에 호소하는 이창희 시장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진주시민들이 울분을 감출수 없었다. 상생을 하자는 서울시의 유감표명은 겉모습과는 달리 ‘갑의 횡포’로 일관하고 있다. 명분이나 논리적 근거가 부족해서인지 서울시는 지금 진주시의 항의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서울시 공무원의 초상권을 침해한다며 본질에 벗어난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이미 법적검토까지 마쳤다는 겁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여기서 물러서면 절절한 진주성 전투의 역사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며 오랜 시간 유등축제를 위해 흘렸던 진주시민들의 피와 땀을 헛되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그냥 지나가면 앞으로 피땀 어린 지역의 자산을 날름 베껴 먹는 갑 지자체의 횡포가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한다. 그러나 혼이 담긴 계란이 얼마나 무서운지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이, 서울시민과 경남도민, 진주시민들이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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