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철부어(?轍?魚)와 고령농가
학철부어(?轍?魚)와 고령농가
  • 경남일보
  • 승인 2013.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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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량 (한국농어촌공사 경남지역본부장)
중국 춘추전국시대 철학자였던 장자(莊子)는 집이 몹시 가난했다. 끼니를 걱정하던 장자는 친구인 위나라 군주 감하후(監河侯)에게 양식을 빌리러 갔다. 그러자 감하후가 며칠 후 세금이 걷히면 삼백금(金)을 빌려주겠다고 둘러댔다. 이에 화가 난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제 이곳으로 오는데 수레바퀴 자국 속에 있는 붕어가 나를 부르더니 “자신은 동해의 수관인데 당장 말라죽을 지경이니 물 한 되만 구해서 부어주시오”하는 게 아니겠나. 그래서 내가 “곧 오나라, 월나라 임금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돌아오는 길에 서강(西江)의 물줄기를 끌어다 너에게 대어주마”라고 말했더니 붕어가 “나는 지금 생사의 고비에 있어 목을 축일 물 한 되만 있으면 살아날 텐데, 나중에 많은 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차라리 건어물 가게에 가서 나를 찾으시오”라며 화를 내더군.

‘학철부어(?轍?魚)’라는 고사성어는 장자의 ‘외물편(外物篇)’에서 유래된 말로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에 있는 붕어’라는 뜻이다. 즉 매우 다급하거나 곤궁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학철부어처럼 미래의 많은 강물보다는 당장의 한 됫박 물이 필요한 사람들이 바로 고령 농업인들이다. 이들은 농지 등 자산은 많으나 소득이 줄어들어 매달 생활비에 쪼들리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농촌고령화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기준 농촌의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35.6%로 2011년 33.7%보다 1.9% 상승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 고령화율 11.8%의 3배를 넘는 수준이다. 농촌은 이미 심각한 초고령화 사회다.

농지연금 제도는 고령농가의 소유농지를 담보로 농지은행이 역모기지 방식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국민연금 등의 공적연금의 수급권자가 극히 드물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고령 농업인의 안정적 노후생활을 위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이다.

그러나 농지연금을 활성화하는 데는 농지는 가산(家産)으로써 자녀에게 상속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래서 ‘농민은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로 죽는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있다. 농지연금에 가입하기 위해 상담을 하고 가는 고령농가 대부분이 자녀와 의논해 결정하겠다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가입 후 자녀들의 반대로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도 많다.

농지연금 가입을 반대하는 자녀 중에는 대부분 부모의 생활비를 책임져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부모 봉양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은연중에 부모의 재산은 물려받고 싶어하는 모순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부모들부터 이러한 생각을 과감히 떨쳐야겠다.

최근 주택금융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 4명 중 1명(25.7%)은 ‘집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다. 이제 고령 농업인의 농지는 자식을 위한 가산으로서의 땅이 아니라 희망의 나팔꽃이 피어나는 터전이 돼야 한다. 학철부어의 어려움에 처한 이 시대 고령 농업인들의 생활안정과 복지를 위한 바탕이 돼야 한다. 그리고 농지연금의 활성화는 고령화 사회의 소비촉진을 통한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농지연금이 고령 농업인들에게 희망의 나팔꽃이 되었으면 한다.

안효량 본부장
안효량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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