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깨어있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 아름다워진다
세상은 깨어있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 아름다워진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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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얼마 전 한 광고지를 펴든 순간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희생하신 테레사 수녀님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무등걸처럼 거칠고 주름진 손등은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평생 함께 살아간 테레사 수녀님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곱고 부드러운 손에 물집이 생겨 터지고 찢어져서 다시 아물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자신의 훈장과도 같은 손, 그만큼 치열하게 가슴이 뛰었다는 증거이리라. 아낌없이 존경과 박수를 받아야 할 그 손을 바라보노라니 ‘마산합포 할머니봉사회’ 서두연 할머니의 너그럽고 후덕한 모습이 인상 깊게 떠올랐다.

서 할머니는 1968년 새마을운동이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운동으로 전국에 메아리칠 무렵, 농촌지도소에서 시행한 생활개선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40여년 동안 한결같이 참다운 봉사활동을 실천해 오고 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임에도 소외되기 쉬운 이웃들을 위해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째 주위를 돌며 헌 옷감이나 헝겊 오라기 등을 거둬들여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가구 등에게 만들어 준 옷가지들만 해도 2만 벌이 훨씬 넘는다고 하니 서 할머니야말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진정한 봉사자’가 아니고 무엇이랴.

서 할머니의 이러한 봉사정신에 착안해 우리 마산합포구청에선 각급 봉사단체의 협조로 밥상을 매개로 친교를 맺게 하는 ‘소셜 다이닝 (Social Dining)’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하나의 복지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이웃간의 갈라진 삶을 서둘러 봉합하고, 사회나 주변사람들이 챙겨주거나 감싸주지도 않아 힘겹게 살아가는 소외계층, 그리고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무위고에 시달리는 ‘홀몸노인’ 등 소외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사회’라는 테두리 중심에 서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어르신들은 어려움을 나누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고 하더니 과연 그랬다. 그저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을 표하고자 하였건만, 그 보잘것없는 성의에도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골 깊은 주름살만큼이나 외로움이 여러 켜 쌓인 얼굴에서 금세 생동감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그리곤 잿불화로에 불씨가 일 듯 식어버린 그 가슴에 생명의 온기가 지펴지는 듯했다.

지금은 비록 늙고 기력이 쇠잔하셨지만 나의 가슴에 별이 되고, 내 삶에 꽃씨를 뿌려주시던 우리네 부모님들이 아니던가. 부모님 생각에 서두연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각종 야생화들이 아름답게 펴 은은한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작은 정원은 훈훈한 인심에 정겨움이 마구 묻어났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서 할머니는 그날도 여전히 자원봉사 회원들과 함께 재봉틀을 돌리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게 돼 기쁘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봉사활동을 할 것”이라며 하얀 박꽃같이 활짝 웃으신다. 그 흔한 장식품 하나 없는 작은 방안은 할머니의 검박하면서도 충일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작업을 하다 말고 어서 들어와 앉으라며 주섬주섬 옷감을 주워 담는 그의 두 손에 눈길이 멈췄다. 손가락 마디마다에 박혀 있는 굳은살이 그동안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서 할머니는 자신만의 안락한 삶을 스스로 포기하셨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며 인생이란 강물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려 애쓰며 사셨다.

자원봉사자의 두툼하고 튼 손등을 바라보면서 세상은 이처럼 깨어 있고 의식 있는 소수의 사람에 의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조광일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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