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희지 (소설가)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본다. 몽실몽실 구름 숭어리가 잘 익은 목화송이 같다. 송이송이 따 모아 이불을 만들까. 까슬까슬 풀 먹인 홑청을 입혀서 덮고 누우면 가을이 사각사각 다가와 이야기꽃을 피울 거야. 그러면 여름 내내 지쳤던 심신의 때가 말끔히 씻겨 나가겠지.
맴맴 찌르르르.
사색에 빠져 있지만 말고 어서 책을 펼치라는 듯 늦매미가 운다. 그래, 책읽기에 너무 좋은 계절이다. 더위를 핑계로 덮어 두었던 책을 꺼내 읽으니 삶의 무게마저 사라지고, 순간 텅 빈 가슴 속에 행복이 그득해온다.
한 장 한 장 갈피가 넘어간다.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넘길 때의 촉감이 익숙하고 정겹다. 야! 행복하다. 인간이 하루하루를 사는 이유는 행복을 위해서라는데 나는 왜 이 행복감을 여름 내내 유보시켜 놓았을까. 오늘은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말해야겠다. 내 행복을 너희들에게도 나누어주겠노라고. 말똥말똥 눈망울을 굴리며 무슨 소리냐고 물을 것 같다. 독서할 때의 행복감이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아이는 관심 밖이라는 듯 갖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시선을 돌릴지도 몰라.
문명의 물결이 흘러든 곳에는 어김없이 스마트 폰이 삶의 방식을 뒤흔들고 있다. 바야흐로 인간은 무서운 속도로 스마트 폰에 영혼을 점령당해 노예가 되어 가는 중이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열기만 닿으면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이기(利器)에 인간만의 특권인 사고능력을 빼앗기고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옳고 그름, 지양해야 하는 것과 추구해야 하는 것을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그것은 육체와 정신의 참 행복을 위한 에너지를 균형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인간의 특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독서해야 한다. 사색해야 한다.
독서는 시간상 여건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접하게 해 준다. 사색은 단편적이고 편중된 사고체계를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개선시켜 준다. 이는 물질문명에 저당 잡혀 있는 우리에게 삶의 질을 높여 준다.
대도(大盜)라 불리던 어떤 사람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갖지 못할 물건은 없었어요. 그런데 딱 한 가지는 가질 수 없더라고요.’ 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타인의 머릿속에 든 지식과 지혜는 아무리 훔치려고 해도 훔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안전한 보안장치가 되어 있는 보석함을 갖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채우지 않는가.
이 좋은 계절에 독서 하자. 사색 하자.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것들로 우리의 보석함을 채우자. 눈부신 저 가을하늘처럼 내 삶이 빛날 것이다.
최미희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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