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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다투던 산하엔 고즈넉한 세월만이경남일보 선정 100대 명산 <69>백아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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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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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있는 구릉에서 바라본 마당바위일대 암릉. 좌우익 이념의 갈등으로 빚어진 처절한 피의 전장이지만 지금은 눈물겹도록 평화롭고 아름답다.
 
 
백아산은 지리산, 백운산과 함께 우리 민족의 비운을 간직한 산이다.

좌·우익 이념의 갈등으로 촉발된 파르티잔, 이른바 ‘빨치산’과 이를 소탕하려던 ‘토벌대’ 간 치열한 살육전쟁이 벌어진 공간이었다. 양측 간의 목숨 건 전쟁, 고지 사수와 탈환에 옥죄인 그들의 전장에는 총알이 가을볕에 콩 튀듯 분별없이 날았고 붉은빛 선연한 끓는 피는 분수처럼 튀었다.

1950년 9월 김선우 전남도당유격대사령관은 백아산 정상과 마당바위 일대에 진지를 구축했다. 특히 백아산 마당바위는 천혜의 요새로 토벌대의 진출을 차단하고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아지트자 유일한 공간이었다. 김선우는 지리산조선인민유격대총사령관 이현상 휘하에 있었다.

1951년 군·경토벌대는 김호용 화순경찰서장을 필두로 중대병력을 이끌고 김선우 유격대 소탕에 나선다. 빨치산은 망루와 요새를 활용해 총을 쏘며 극렬하게 저항한다. 그러나 작심하고 치닫는 토벌대에겐 중과부적 백아산을 내주고 만다.

고지를 점령한 토벌대는 인근 군인들을 재결집해 장기전에 돌입했다. 탈환의 기쁨도 잠시, 빨치산은 단 하루만에 전열을 재정비하고 포위망을 형성해 파상적인 공격을 해오고 결국 고지를 다시 내준다. 이때 주둔하던 토벌대원 450여명이 꽃잎처럼 산화했다. 이도 끝이 아니었다. 빨치산의 저항이 장기화하자 토벌대는 군·경합동연합본부를 조직하고 일본에 있던 미 전폭기까지 요청해 백아산 총공세를 감행한다. 전세는 군·경합동본부로 기울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저항하며 낮게 나는 전폭기 1대를 격추시키기도 한다.

‘무엇이 남고, 누가 승리한 전쟁일까’. 여수·순천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이념의 갈등, 살육전쟁은 가차 없는 피의 홍수로 결말이 났다. 군·경합동본부도 빨치산의 생명들도 이름 없는 계곡의 고골(枯骨)이 됐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곡 바위틈에 하릴없이 해빛의 명암·온한에 의지한 채 정적을 지켜야만했다. 피가 진하다 했던가. 오늘 석양은 백아산 서쪽 하늘에 있고 전쟁의 파편은 땅에 뒹굴고 있다.

백아산 정상에 올라 문바위 갈림길로 향하던 중, 모롱이에서 땅에 묻혀 썩은 탄피 몇 개를 발견했다. 전리품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백아산 일대에는 이 외에도 휴양림쪽 산허리 동화석굴에는 그들이 만든 비트가 남아 있어 당시 처절했던 생존의 몸부림을 증언하고 있다.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을 쓰면서 백아산 마당바위에 올라 걸죽한 술 한잔을 삼키며 그들의 실화를 구상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조원제는 실제 인물 소년 백연채의 삶을 그린 것이라 한다.

잔인하게도 지금 산은 눈물겹도록 평화롭고 아름답다. 마당바위 천불봉 사이 구릉에는 고령의 철쭉과 싱그러운 초원이 더없이 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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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묻혀 있는 탄피

▲백아산(810m)은 전남 화순군 북면에 있는 산. 바위에 석회성분이 많아 흰빛을 내는데 ‘거위 아(鵝)’를 써 백아산이라 부른다. 흰빛과 어울려 있는 산이 잘 가꾼 부잣집 정원 같다. 북쪽으로 무등산, 남쪽으로 모후산이 있다. 칼날 같은 바위가 많아 산세가 험하다. 천불봉 산 중턱에는 2억년전 형성된 석회암 동굴이 있다.

▲산행은 원리방향 아산목장에서 수리방향 백아산자연휴양림을 한 번에 연결하는 일관산행이 정석이다.

아산목장 덕고개→안부→마당바위입구 능선삼거리→샘→백아산정상→암릉 틈바위→문바위갈림길→전망바위→팔각정→암릉→휴양림이정표→휴양림, 휴식없이 7.5km에 4시간이 소요됐다. 마당바위방향은 출렁다리 공사 중으로 출입이 제한돼 있다.

▲오전 9시 25분 아산목장 옆 도로변 덕고개에서 출발한다. 검은 천을 둘러 쓴 인삼밭을 왼쪽에 두고 넓은 길이 열린다. 갑자기 길이 좁아지면서 ‘백아산 정상 2.9km’ 이정표를 따르면 수림 속으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수목의 산길. 30여분정도 오르면 평상이 놓인 능선 삼거리가 나오고, 나무들 사이로 이 산 특유의 흰바위가 첫선을 보인다.

출발 50분만에 오름길 먼당에서 두번째 갈림길을 만난다. ‘마당바위 100m, 백아산정상 0.8km’ 이정표가 멍청해도 갈 길을 알려준다. 마당바위 쪽은 화순군에서 등산객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출렁다리 설치공사를 하고 있어 출입이 제한돼 있다. 넓이 2.5m, 길이 66m짜리 현수교 공사로 연말 공사가 완공될 예정이다.

정면 가야할 곳, 사면에 구릉지대가 있고 지형 따라 초지가 형성돼 있으며 주변으로는 키 크고 둥치가 큰 철쭉군락이 있다.

그 위로 하늘과 맞닿은 산은 천불봉. 기기묘묘한 바위군이 호위무사같다. 길을 잠시 벗어나 내려서면 구릉의 우묵한 곳에 샘물이 있다. 인근 산악회에서 용머리를 놓았고 입에서 물이 나온다. 물받이는 이끼가 끼어 고풍스럽다.

샘 주변에서 뒤돌아보면 비로소 ‘마당바위 암릉구간’의 자태가 온전하게 보인다. 설악산을 보는듯 장관이다. 흡사 울산바위를 닮았다.

땅속에 숨었던 바위가 융기한 것인지 하늘에서 쏟아진 것인지 커다란 바위군은 절터바위, 상여바위다. 서북쪽으로 내달려 성곽처럼 띠를 형성하고 있다. 처절했던 곳이라 반눈을 하고 올려봐도 지금은 아름다운 산일뿐이다. 그런 마음이 맥없고 처연하다. 봄철 고령의 철쭉이 피면 이곳에서 산화한 희생자들의 위령제가 열린다. 천불봉 주변에 석회암동굴이 있다고 해서 다가갔지만 접근이 불가해 되돌아 올수 밖에 없었다.

샘에서 돌아와 등산로에 다시 올라선다. 구릉인 이유로 초원에서 특이한 꽃을 만날수 있었다. 본보에 ‘야생초 산행’을 연재한 정찬효 전 농협 진주지부장은 ‘절굿대’라고 일러주었다. 보라색꽃이 열매처럼 동그랗게 생겼으나 암·수술, 꽃대 꽃잎 등 있을 건 다 있는 엄연한 꽃이다. 잎은 바닥에 붙었고 하나의 꽃대에 탁구공만한 꽃을 피운 자태가 특이하기 짝이 없다. 정 전 지부장은 “국화과로 전국 야산에 분포하며 ‘절구’처럼 생겨서 절굿대”라고 덧붙였다.

천불봉 암릉을 지나면 철사다리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아침 일찍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비는 그칠줄 모르고 연신 굵어졌다 가늘어 졌다를 반복한다.

출발 1시간 30분만에 백아산 정상에 닿는다. ‘매봉’이라고도 부른다. 조계산 모후산 무등산이 비가 잦아든 구름사이로 보인다. 흰빛의 날카로운 바위들이 삐죽삐죽 서 있는 모습은 자꾸 국군과 빨치산의 동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쟁통에는 생명을 의지할 은폐와 엄폐장소로 쓰였을 바위들이다.

정상을 내려선다.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가 날뛰는 것같이 어지럽고 날카롭다. 좁고 험한 길, 크고 작은 바위가 그렇다. 도리 없이 조심해야한다.

사람이 겨우 빠져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 바위를 빠져 나간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잠시도 그칠 줄 모르는 게 감질 나는데, 어쩌랴 하늘 보고 시비 거는 이가 있을까. 급한마음에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고 문바위 삼거리까지 내달린다.

문바위에서는 갈림길. 왼쪽으로 난 하산 길을 따르면 빨치산이 조성했던 비트가 몇 군데 나온다. 생존을 위해 사용했던 용품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문바위를 뒤로하고 직진 길을 택한다.

산행시작 1시간 45분만에 전망 좋은 바위에 선다. 발아래 동복호. 산과 산이 이어지는 실루엣, 땅속에 묻힌 탄피를 발견한 곳이 여기 어디쯤이다. ‘눈도 좋다’는 동료 산우의 말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또 다른 탄피…,

이 세대, 군 시절 봤던 탄피는 아니다. 누구일까 주인이. 빨치산, 토벌대? 탄환은 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구름처럼 부질없는 생각 끝에 상념, 이는 모두 우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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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만 남은 백학정


산행 출발 2시간 30분만에 팔각정 백학정에 선다. 기둥만 남아 있다. 낡고 훼손돼 얼마 전 사라졌다.

여기서 다시 암릉구간이 20여분 이어진다. 두곳의 철계단 두곳의 철교량, 새로 설치한 로프는 최근 등산로를 정비한 흔적이다.

내려올 때는 풍경을 볼수 없지만 어느 정도 내려와 언덕에 서서 뒤돌아보면 지나왔던 산과 하늘에 옹골진 암릉이 하늘로 솟구쳐 있다.

3시간 20분 만에 백아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안부에 닿는다. 관광객을 위해 설치한 공원의자가 숲속 여기저기에 있다. 휴양림을 찾는 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 자연의 청정함을 만나는 공간이다.

데크를 따라 200여m 내려가면 백아산자연휴양림의 대피소·취사장·운동장이 나온다. 화순군이 운영하는 휴양림은 1996년 조성됐고 베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출발 3시간 30분에 휴양림 대피소에 도착한다. 젖은 몸에 늦은 점심…, 휴양림을 가로질러 수리방향으로 20여분 더 내려가면 수산제, 그 옆에 하늘바위가 우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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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산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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