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길
희망의 길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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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외남 (사천 대방초등학교 교사)
추석이 바로 눈앞인데도 뙤약볕 열기는 식을 줄 모르지만, 초목들은 가을향기를 물씬 뿜어내고 들녘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민족이 대이동한다는 추석날, 배달민족 모두가 고향땅을 찾아 가족들이 환한 웃음꽃을 피우는 행복한 장면을 그려본다. 남녘 땅끝 토말에서 북녘 땅끝 온성까지 막힌 곳 없이 어디든지 오갈 수 있고, 흩어진 가족들이 부모형제와 만나 해후의 정을 마음껏 나누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 추석에는 구름 사이로 비치는 보름달을 보며 모난 부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서 보름달처럼 둥근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며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나눔의 명절이 됐으면 한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친구에 대한 우정을 생각해 보도록 지난 금요일 국어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다. 편부·편모가 많은 우리 반 아이들의 편지를 읽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저는 아버지와 할머니와 같이 살잖아요. 아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그런데 아버지가 건강진단을 하신 후 고지혈증과 당뇨가 있고, 고협압이라 뇌졸중이 올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아버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슬펐어요. 그날 저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된 것 같아요. 아버지! 저를 사랑하신다면 건강하게 살아주세요. 저는 소원이 그것밖에 없어요.”

“엄마께 할 말이 있어요. 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밤마다 엄마가 준 이불을 덮어 쓰고 자니 엄마냄새가 나고 엄마가 준 팔찌를 끼면서 엄마를 생각해요. 가끔씩은 엄마가 너무 필요하고 엄마에게 기대고 싶어요. 엄마께 전화를 안하는 이유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슬퍼지고 마음이 아파요. 아빠가 엄마이야기를 하면 참았던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위해 애쓰셨던 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엄마,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선생님께서는 제가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는 희망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가 잘못하면 판사님처럼 척척 해결해 주십니다. 태경이와 어울리지 못했는데 태경이와 안 싸우는 백신도 척척 만들어 주신 선생님, 백신이 태경이한테만 통하고 저는 왜 안 통하는 걸까요? 수십개의 백신을 만들어 주시는 데도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해드린 것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빛보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의 몸에서 등대처럼 반짝이고 계시는 선생님, 저의 마음도 선생님을 향해 등대처럼 반짝반짝 빛납니다. 앞으로 백신을 조금 더 만들어 주십시오. 선생님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이나 산해진미도 질병이나 근심걱정이 많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가을 햇살에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물결,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느끼는 여유를 가진다면 일상에 갇혀 무디어진 삶도 자유롭고 넉넉해질 것이다. 하던 일 잠시 멈추고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도 해보자. 황금빛 인자한 미소로 반겨주는 들녘처럼 이 가을을 넉넉한 웃음으로 풀어 간다면 다난한 세상도 더욱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풀 한 포기, 야생화 한 떨기에도 관심을 갖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생님을 존경하며 친구를 사랑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서외남 (사천 대방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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