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담긴 진해 중원로터리 가로경관사업
역사가 담긴 진해 중원로터리 가로경관사업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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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다시는 보기 싫다고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셔 버린다고 해서 짓밟힌 역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뼈아픈 우리 동네 역사를 제대로 보존·활용함으로써 동네를 역사교과서로 만드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이다. 이러한 시도를 주민과 전문가, 공무원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동네 역사는 더 이상 과거에 갇혀 있지 않고 현재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우리의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진해에는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방사형 시가지의 본래 모습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 중원·남원·북원이라는 이름의 3개 로터리를 중심으로 조성된 주거단지이다. 1905년 일본의 통감정치가 시작되면서 진해를 중심으로 일본 해군을 위한 군항건설에 착수했다. 1906년 9월에는 진해 군항 예정지를 획정하고 경계표를 세웠으며, 1909년에는 일본 거류민의 주택지를 만들기 위해 철거와 추방을 시작하였고 드디어 1912년 진해 군항 대시가 계획도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1905년 12월에는 군항 예정지를 획정하기 위해 일본 군인들과 측량사들이 왔다. 당시에는 이 동네를 도만이개(도만포)라고 불렀으며 11개 마을에 390호, 2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정복자들이 제멋대로 염전, 논밭을 다니면서 측량을 하자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저항하였다. 측량기구를 넘어뜨리고 주먹다짐을 하였다고 한다.

강한 저항에 부딪혀 한발 물러섰던 군인들은 다음 해에는 육전대를 상륙시켰다. 일본에서는 해병대를 해군 육전대라고 한다. 상륙 예정지에서 교두보 확보를 위해 소규모 육상전투를 하는 해군보병인 셈이다. 1945년 종전 직후 미국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부활하였다고 한다. 육전대를 앞세운 측량사들은 측량할 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칼을 꽂고 총을 세워 잡은 채 측량을 시작하였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이때 도만동 청년 우찬옥(1872~1928)이 일본 헌병의 보초선을 뚫고 자기 밭에서 측량작업을 하고 있던 일본인을 밀치다가 일본 헌병에 의해 막사에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결코 잊어서는 안될 우리 동네의 역사이다.

지난해 중원로터리 근처에 조성된 진해 군항마을 역사관 옆에는 이러한 사실을 적은 설명판이 세워져 있다. 도만동에 살고 있던 우리 조상분들이 총칼로 협박당하면서 경화동으로 강제 이주당하였던 가슴 아픈 역사를 이제는 가시화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중원로터리의 중심에는 본래 팽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해방 이후에 시계탑, 분수대 등의 상징 조형물로 바뀌어 있던 것을 기억하는 주민들이 많다. 역사를 복원하는 입장에서는 총칼을 든 군인과 측량하는 측량사 그리고 이들을 밀쳐내는 도만동의 주민들을 조각한 집단군상을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로터리 주변의 팔거리 인도에는 이 동네에서 측량지역으로의 출입을 일방적으로 금지시켰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설치물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입입금지라는 푯말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의 출입금지와 같은 뜻인데 일본에서는 입입금지(立入禁止)라고 한다. 일본 여행을 하다보면 특정건물에서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든가 보안림 출입금지의 경우 입입금지라고 적혀 있음을 볼 수 있다.

진해 웅동에는 일제 강점기에 군인들의 식수공급을 위해 만든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에는 한국사람의 출입을 금지시키기 위해 입입금지라고 적힌 표지석을 세워 놓았었다. 그동안 관심 갖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아무렇게나 있던 이 표지석을 주워서 현재 김씨네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표지석과 똑같은 모양으로 8개를 만들어서 로터리 8거리에 하나씩 세워 놓는다면 스토리텔링이 무척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만약 행정기관에서 이 동네의 가로경관사업을 계획하면서 어울리지도 않는 현대조각품을 설치하는 식으로 구상한다면 그것은 있는 스토리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계획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는 심심찮게 생긴다. 왜냐하면 공개입찰로 진행되는 사업계획용역은 주로 그 동네의 역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지역의 전문기관이 맡기 때문이다. 누가 맡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0년 전 도만동에서 일어난 역사를 담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창원시에서는 내년에 군항마을 가로경관사업을 할 예정이다. 스토리텔링에 충실하기 위한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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