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사퇴와 우리 사회의 함의(含意)
검찰총장 사퇴와 우리 사회의 함의(含意)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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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수준 높은 정치사회적 삶을 윤택하게 하여 주는 가치는 권력, 부, 명예와 같은 한정된 세속적 가치접근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그러한 가치를 획득하거나 지속하기 위해 현대를 살아가는 첨예화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나 집단들의 사고나 행위패턴은 상대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 싸우는 풍토가 일반적인 모습이다. 검찰총장 파동도 고도의 정치적 함의가 내포돼 있는 사건인 만큼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사건은 정치권력자나 집권세력의 불편한 심기, 공직자 윤리, 그렇게 구체적인 개인정보 무단 취득 권한 적법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자의 임의적 정치행태를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검찰총장은 법적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정치권력자의 임의적 권력행사가 빈번하다는 의미다.

어두운 면, 부각시켜 싸우는 풍토 아쉬워

시대적 큰 흐름은 공동체의 존속유지 발전과 관련된 기본가치의 전제로 모든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어떠한 경우에도 비밀이 유지돼야 하고 지켜야 하는 쪽이다. 물론 입장에 따라 다른 명분으로 논쟁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이번 사건은 근본적으로 이 근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보도 한 달 전에 청와대 측 한 인사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식 의혹’을 뒷조사해 민정수석실에 넘겼다는 정황이 나왔다. 이는 채 총장 혼외자식 의혹보도의 정보출처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일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채 총장의 혼외자식으로 보도한 채모군의 호적과 학적부, 혈액형, 출입국 내역 등은 국가기관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정보다. 문제는 이러한 사적인 정보들이 별다른 보호막 없이 보도되는 상황들이다. 이러한 개인의 사적인 정보취득 경위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주의 헌법에서 보장한 사적인 영역의 정보가 어떤 견제나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에서 향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운영원칙이나 보도관행을 도출해야 할 문제다.

검찰총장 자리는 정치권력자의 의중을 읽어야 하는 피암시성의 세계가 있고,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굴러가게 하는 검찰 본연의 의무도 생각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그런데 검찰총장의 사퇴의사는 청와대로부터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법무장관이 법무부 감찰관에게 채 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의 진상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지금 사퇴는 수리되지 않고 본인이 그 진실을 밝히면 된다는 입장에서 여론이 뒤엉키고 있다.

채 총장은 이제 자연인이 되겠지만, 개인과 검찰 전체의 명예를 생각해 ‘혼외관계 의혹’에 대해 진실규명에 나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의 문제가 있다. 의혹을 규명해 줄 ‘증거’로 유전자 검사가 거론된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제공하는 사람의 서면동의가 있어야 한다. 임모씨와 미국에 체류 중인 아들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권력자나 검찰총장 당사자의 입장은 그렇다하더라도 유전자 검사와 관련하여 어린 채모군의 사적인 인격보호는 안중에 없다. 채 총장의 사퇴에 대해 여당은 혼외아들 의혹이 사실이 아니면 왜 그만두느냐고 반문하며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사실을 밝히고 나서 사퇴해야지 이대로 그만두면 그 의혹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지적하고, 야당은 입맛에 맞지 않은 검찰총장을 교체하려 국가조직을 동원한 진실을 밝히라고 공세를 취한다.

어느 일방 승리의 답은 나오지 않아

우리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정황이 없는데 확대해석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태도는 합당하지 않다. 검찰 흔들기라고 주장하는 자체도 검찰조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큰 흐름은 사퇴는 수리돼야 한다. 문제는 사실관계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이 일은 지금으로선 여러 상황과 논리, 입장이 나와 미완의 일로 남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승리를 담보하는 상황을 연출해 내지 않는 유일한 답이 되기 때문이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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