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당신들의 천국
  • 경남일보
  • 승인 201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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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진주제일여고 교사)
그동안 정권이나 권력의 교체기 때마다 당대의 명망 있는 시인이나 작가들이 그동안의 태도와는 달리 갑자기 정치에 참여하는 사례가 간헐적으로 있어 왔다. 80년대 5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김춘수 시인이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명망 있는 두 소설가가 여야를 대표하는 두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 공천심사위원에 위촉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두 소설가 중 한 분은 심사 자체를 거부했고, 다른 한 분은 심사에만 참여하고 선거운동 과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대선 기간 중에는 유례없이 많은 문인들이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러시아의 유명한 혁명 시인 마야코프스키는 혁명이 성공하고 난 후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에 자신의 혁명동지이자 친구인 레닌과 결별하고 권총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지식인의 속성을 지닌 작가는 미래지향적 관점을 곧바로 현실에 적용하여 재단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작가정신에 투철한 사람일수록 대체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변하는 현실은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우여곡절과 왜곡을 통해 아주 완만하게 변하는 것이 현실이고, 정치는 이러한 현실적 제약과 속성을 일시에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눈높이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주된 임무는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생산하고 전수함으로써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존재로서 진정한 작가라면 결코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시대적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학의 역할과 정치의 역할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많은 작가들은 대중들의 의식을 확장함으로써 정치와는 다른 측면에서 사회변화의 강력한 동력을 제공해 왔다. 관념의 메아리가 아니라 시대적 과제와 모순을 통찰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지향적 방향을 제시한 결과였다. 정치와는 다른 아주 중요한 ‘앙가주망’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세희는 ‘난장이’ 연작을 통해서 산업화로 인한 노동자들의 소외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고,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서 국가 지도자의 명분과 실제 사이의 괴리,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개인의 희생을 근원적으로 파고들어 당대 정치 현실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점을 우회적으로 제기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코 직접적으로 사회운동이나 특정 당파에 참여하여 앙가주망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무기는 오로지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70년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소설로 형상화하여 많은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와 확장에 지속적 영향을 끼침으로써 시대변화를 견인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일체의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정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치가 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은 70년대의 고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신들의 천국’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70년대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였다. 이들은 이러한 작가정신의 힘으로 어떤 정치인들이나 운동가보다 미래지향적 사회변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물론 다른 정치인들도 전문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분명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듯이 작가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정치 참여의 명분을 위해서 작가의 본령에 충실한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작가는 그 시대의 핵심적 문제를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결부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대중들과 소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당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파악하여 대중들과 소통함으로써 대중들의 인식을 전환하고 확장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 역할이다. 이것이 작가정신에 더 부합되는 일일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을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적 화두를 생산하고 대중들에게 전수해야 할 작가들이 또 다른 ‘당신들의 천국’에 동참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재청 (시인·진주제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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