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의 해프닝
가을 밤의 해프닝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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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 상담소장)
지난 8일 밤, 15년 만의 10월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고 해서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태풍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화면 하단에 빨간 글씨의 속보가 떴다. 북한의 김정은이 ‘총공격 대기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3년 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호언했다는 속보도 내보냈다. 밑도 끝도 없이 ‘총공격 대기명령’이라니…. 근데 왜 TV는 이 급박한 상황에 여전히 태풍 뉴스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어떤 설명도, 대비책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지? 머리 속에 수많은 의문이 떠다녔다. 태풍 뉴스가 끝나니 속보전달이라면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총공격 대기명령’을 이야기하더니, 북한 정권이 군부 지휘관들을 교체했다는 둥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과는 연결되지 않는 뉴스들을 쏟아낸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어째야 하는 거냐고?’라는 질문들을 대답 없는 TV 화면에 던지며 한참을 보고 있으니, 그 이야기가 현재의 상황이 아니고 국회 정보위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발언한 것을 보도한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김정은이 총공격 대기명령을 내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이석기 의원의 강연 녹취록에서 나온 발언을 잘못 전달한 것이라고 한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제 명까지 살려면 TV 뉴스를 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이틀 사흘걸이로 국민들을 놀라게 하는 뉴스를 펑펑 터뜨리던 TV가 이날 ‘전쟁’을 연상시키는 보도로 그 정점을 찍은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국민이 가장 놀랄 만한 단어 ‘김정은’과 ‘총공격 대기명령’만을 언론에 이야기한 정치인이나 사실 확인도 없이 우선 국민들에게 충격만을 안겨주는 보도를 하는 언론이나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육하원칙에 입각한 기사를 쓴다는 기본자세도 지키지 않은 언론을 보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보도를 보고 있으면 정치인이나 언론인들과 같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그리고 너무나 유치하게 자신들의 정략적 이익을 추구하고 그것을 드러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도 인간이므로 개인의 욕망이 없을 리 없고, 그들이 정치인이나 언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고 국가나 국민을 위해서만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거나 국민들에게 진실을 전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국가나 국민의 이익과 조율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욕망보다는 국가나 국민의 이익을 우선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미덕이라고 본다. 그런데 요즘 그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그러한 미덕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노골성과 뻔뻔함에 대한 부끄러움도 버린 것 같다. 오히려 특정 사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유리한 입지를 위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왜곡, 포장해 전달하려는 경향이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밤의 보도 해프닝은 이러한 현재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에 의한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라면 우선 이야기하고 보자는 정치인과 국민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면 우선 보도하고 보자는 언론인의 욕망이 만나 일어난 것이다. 그 욕망 뒤에는 더 깊고 더 노골적인 정치적 욕망이 숨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들의 날뛰는 욕망을 좀 가라앉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들이 좀 차분해져서 자신의 욕망과 국민의 이익을 살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부터 사실을 공정하게 전달하고 국민이 놀라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절실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청자인 우리 입장에서도 이러한 상황에서 TV를 끄는 것이 해법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 보도를 보지 않는다고, 그것을 회피한다고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강문순 (전 진주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 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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