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재 (지역자치부 차장)
사실 밀양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득보다 실이 많은 송전탑 건설 반대가 당연해 보인다. 지가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보상에 대한 반발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반대 수위에 대한 이의는 있을지라도 명분은 충분하다는 소리다.
일련의 추진과정을 지켜본 사회일각에서 전력공급을 둘러싼 구조적 모순이 터졌다고 지적한다. 타 에너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싼 전기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요금제도를 손보지 않고 공급에만 매달린 결과라는 것이다. 현상은 송전탑과 주민갈등이지만 속내는 비 이상적인 전기요금 부과체제가 깔려 있다는 소리다. 이들은 “대립과정에서 개입한 외부세력이 극한 투쟁의 조짐을 보이면서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며 안타까워 한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본질적으로 보상규정의 한계에서 기인한 바 크다. 현실을 외면한 보상으로 주민을 설득하려한 한전은 원인제공자의 처지가 됐다. 물론, 한전은 억울할 수도 있다. 주민들이 만족하는 협의책을 제시하기에는 보상규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철탑 건설지 매입과 송하로 사용료 지급 등 지금의 보상규정으로는 주민들이 만족하는 협의안 제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현실성 있는 법 제도 개선을 위한 사전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국민을 위해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는 한전측의 명분보다는 고압선로가 지나가는 피해주민의 호소가 더 피부에 와 닿을 수밖에 없는 보상규정이 조속히 개선돼야 제2, 제3의 국책사업 반대 투쟁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OECD 국가중 최저 수준이다. 석탄으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이 전기를 다시 열에너지로 전환해 난방 등으로 사용하는 비효율적 수요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전기료라 가능하다. 값싼 전기료의 수혜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국책사업이니 협조하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정집단의 수혜가 또 다른 집단에 불이익으로 작용하는 지금의 요금제도를 더 이상 유지해서 얻는 국가적 이익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 현실화가 거론될 때면 항상 산업전기가 대두 된다. 산업입국을 외치며 경제발전에 매진하던 때의 장려책이 아직도 유지되면서 그 부담을 일반 국민이 떠 안아 왔다는 소리가 나온지 오래다. 각종 수혜로 몸집을 불려온 기업, 특히,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이 값싼 전기료의 최대 수혜자임은 극명하다. 지가 수익을 밑도는 현재의 보상 규정을 고치기 위해서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본질을 외면하고 주민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며 반대시위에 동참한 정치권의 어긋난 행보에 대한 지적도 있다. 국민의 재산권과 생활권,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을 위해 시위현장 보다 국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아지 잃고 외양간 고치기’ 일지언정, 국가기간산업이 사사건건 외풍에 시달리는 현상을 막기 위한 법규정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국민의 소리는 모든 정치권에 대한 경고에 다름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 농촌은 도시에 자양분을 공급하며 많은 부분을 희생해 왔다. 경제인구를 양성해 도시에 바쳤고, 맑은 물과 푸른 산을 가꾸고 지키며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삶의 쉼터로 제공해 왔다. 산업입국의 가치에 신음하는 오늘날 농촌현실을 보면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의 긍지와 자부심이 빛 바랜 과거로 전락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만백성의 통칭인 ‘농자(農者)가 눈물짓는 현실을 외면하는 국책사업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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