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여행은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 경남일보
  • 승인 201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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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인간은 태어나 생(生)에서 사(死)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흡사 여행과도 같다. 우리는 여행에서 인생의 본질을 읽을 수 있듯, 인생사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흘러가는 행운유수의 경지(境地), 이것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는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행운유수의 정신신이야말로 여행의 본질로서 누구나 감상적 시인이 되고, 낭만적 예술가가 된다. 여행은 분명히 인생의 멋이기도 하지만, 여행에서 새로운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되고 또한 자기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할 때 즐겁고 자유롭기 위해서는 행동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 관조자(觀照者)의 입장에 서야한다. 왜냐하면 여행은 순수한 관조자의 세계이기 때문에 즐겁고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차를 타든 배를 타든,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혹은 걸어가면서 푸른 산을 보고 넓은 바다를 접하고 고적(古蹟)을 접할 때도, 여행자는 자유로운 관조의 심정으로 이것을 보고 느끼면서 지나갈 따름이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유쾌한 감정도 들고 슬픈 생각을 하면서 허무한 심정에 사로잡히고 동경(憧憬)의 염(念)도 품을 수 있지만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

여행은 인생과 자연에 대한 조용한 관조이기 때문에 여행자는 자유로운 관조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대해야 한다. 관조는 예술의 정신이면서도 여행할 때는 예술가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우리의 주관과 욕망과 이해와 감정과 편견이 작용한다면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자도 될 수 없고 자유로운 감상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에서 사물에 대한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경지를 배우기 위해서는 행운유수처럼 오직 자유로운 관조의 정신을 지니고 참다운 여행인 으로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사랑이 인생을 젊게 하듯이 여행도 인생을 젊게 한다. 사랑이 이 세상에 대한 황홀한 도취(陶醉)를 통해서 인생을 젊게 하고, 여행은 자연에 대한 생생한 관조를 통해서 인생을 젊게 한다. 높고 좋은 산일수록, 넓은 바다일수록, 깊은 골짜기일수록 여행의 멋은 더욱 난다. 자연은 인간의 고향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에 대해서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다. 아니 우리가 여행에서 끝없는 향수를 경험하는 것도 여행 그 자체가 인생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어둠의 장막이 대지를 조용히 덮기 시작하는 황혼 무렵, 기적소리 울리면서 어둠을 뚫고 달리는 저녁 열차에 몸을 실고 창밖의 희미한 강이나 들이나 산이나 하늘을 바라 볼 때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를 느낀다. 그것은 여정의 극치이고, 우리는 저마다 지상의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쉼 없이 달리다가 죽는 것, 이것이 곧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에서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 자기를 발견하게 되고, 인생의 본질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유유자적하게 행운유수처럼, 어쩌면 그렇게 여행하는 것이 여행자의 본연의 보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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