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런 法治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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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3.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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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지난해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한국에 유치하여 우리의 국격(國格)을 한층 높였고, 지난 14일 국제기구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창립총회가 인천에서 열렸는데, 이 기구의 사무처도 한국에 두기로 했다. A-WEB은 2011년 우리나라가 창설을 제안하고 설립을 추진한 선거분야 국제기구로, 이 기구의 사무처 유치를 통해 2700여억 원의 경제유발 효과와 선거 민주주의 심장부라는 국가 이미지 제고도 예상된다.

요즘 서울중앙지방법원 1층에서는 ‘홍익대 미대생 법정풍경展’이 열리는데, 그 중 ‘nonsense’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저울 한쪽엔 나뭇잎이 올려져 있고 다른 한쪽은 비어 있는데, 저울은 빈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작가는 ‘재판이 사람이 진행하기 때문에 감성적인 면과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공간일 수 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전시가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최근 판결한 몇 건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A-WEB의 창설은 ‘공정한 선거 없이는 정부의 정당성도 없고 이로 인해 정치 안정과 경제발전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는데, 그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예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대리투표’ 무죄선고일 것이다. 지난 7일 이 사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반드시 헌법이 규정한 보통·직접·평등·비밀투표라는 4대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대리투표가 일정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이에 이뤄져 ‘위임에 따른 통상적인 수준의 대리투표’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판결이다.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부터 고등학교 ‘법과 정치’에 기술된 ‘민주선거의 4대 원칙’은 글자 그대로 준수해야 될 원칙이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에서도 집회신고 범위를 벗어나 편도 4차로를 점거했던 쌍용자동차 전노조의 불법적인 폭력시위에 대해서도 반대편 4차로가 있으니 무죄라 선고했고,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지난달에도 불법 방북자의 김일성 시신 참배 부분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동방예의지국에서 망인의 명복을 비는 의례적인 표현’이라 했다. 여기에다가 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후보 일가와 관련된 주진우(시사IN기자)와 김어준 씨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허위보도는 맞지만 고의성이 없다”는 배심원 평결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주간지에 보도하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 고의성이 없다고 하면 그 고의성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앞서 언급한 A-WEB 창설의 힘은 우리의 첨단 선거기술이라는 ‘통합 선거인명부와 투표지 분류기’와 ‘정확하고 신속한 개표기술’로 후발 민주주의 국가에서 탐낸다고 하지만 대리투표 또한 탐낼까 염려되고, ‘동방예의지국’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면 조상에 대한 예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일본 각료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아, 이 모든 염려가 나 혼자만의 기우(杞憂)일까. 작가 이문열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 어마지두에 쓸쓸한 가을날, 무수히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날개 없이 추락하는 사법부의 신뢰도 같이 본다.
문형준 (진주동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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