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시제
증조부 시제
  • 경남일보
  • 승인 2013.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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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지난 여름 벌초날 집안에 분란이 생겼다. 납골당에서의 공동벌초가 끝난뒤 종회(宗會)의 회장 아저씨가 “7대 종손의 증조(曾祖)항렬도 시제(時祭)로 올리자”고 제안했다.(필자가 7대 종손이다) 고조(高祖)까지 기제사(忌祭祀)를 모시다가 몇 년 전에 고조는 시제로 모시자 해서 바꿨는데 증조까지 그러자는 제안이다.

회장은 필자의 큰아들인 8대 종손이 장가를 갔으므로 그에게 고조되는 7대 종손의 증조 항렬도 시제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시대에도 맞다는 것. 그런데 초등학교 교장인 종회의 총무 아저씨(회장·총무 모두 7촌)가 극력 반대했다고 한다. “8대 종손에겐 4대가 되겠지만 우리 항렬에겐 결국 할아버지인데 시제로 모시는 경우가 가당하냐”는 반박이었다. 필자는 참석하지 않았던 벌초날의 논란은 결론 없이 끝났다고 한다.

이미 10년 넘게 제사를 모셔온 아내가 이왕 지내는 제사 시리즈인데 증조를 시제로 모시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냐는 반응을 보인 탓이다. 시대 흐름따라 부부 합사(合祀)를 해와 기껏 한 회일 뿐이고 명절 차례는 마찬가지 아니냐는 게 아내의 무관심 이유였다. 굳이 입장을 묻는다면 난 회장편이다.

총무 아저씨야 “어떻게 할아버지를…”하지만 그것도 예전 일가붙이들이 한동네 모여 살면서 제사를 지극정성 모실 때 이야기다. 동네 일가들이 오전부터 모여 제수를 장만하고 다음 날 새벽 닭이 울어야 헤어졌다. 고조 제사면 8촌까지 모두 한 부엌, 한 방에 모이던 시절이 70년대까지였다.

제사를 서울로 모시고 온지 10년이 지났다. 이후 증조 기제사에 5촌 당숙들이 참여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부산, 창원, 진주에 사는 이들이 당신들의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러 상경하는 것은 당숙들이나 내게 모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올 수도 없고 오지도 않을 제사라면 1년에 한번 그래도 일가붙이들이 모두 참석하는 시제로 모시는 것이 합리적이라 싶다.

또 하나는 며느리에게 제사를 물려줄 때는 지금보다 더 단순해져야 할 것이란 강박관념 탓이다. 어머니가 지내던 제사와 아내가 지내는 제사는 음식은 같아도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며느리의 제사도 아내의 것과는 그만큼 달라야 할 성싶어서다.

총무 아저씨는 진주에 산다. 김해에서 당신의 당질이 지내는 할아버지 기제사에 주로 참석한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할아버지 제사를…” 하겠지만 자신의 열성만으로 시대변화를 되돌리기도, 설명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파트에 살고,아파트 제사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 자체가 재앙이다. 직계 3대도 함께하기 어려운 공간에 낯설기만 한 5촌, 6촌들이 할아버지 제사라고 모여 북적거리는 광경을 생각해 보라.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라면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시제 때 이 논쟁이 재연되면 나는 ‘입장없음’으로 있을 것이다. 제사를 지내기 싫어서인 양 오해받을 이유가 없고, 종손이 입장을 밝히기보다 서로 합의하는 모양새가 좋기 때문이다.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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