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개혁
제사 개혁
  • 경남일보
  • 승인 201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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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지난 일요일 저녁 증조부모 제사를 모시는 자리에서 내년부터의 ‘제사개혁’을 밝혔다. 참석자라 해봐야 동생부부와 아들부부, 조카 등 10여명 안팎이다. 그래도 제사의 형식과 틀을 바꾸는 일이다. 어머니와도 상의를 거친 일이어서 알리기만 하면 되고 증조부 제사가 한 해의 마지막 기제사여서 택일이 됐다.

“내년부터는 우리도 제사를 초저녁인 8~9시대에 지내는 것으로 하자.” “증조부모 제사가 시제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내년부턴 조부모님 제사와 합사하는 것으로 하자.” “설차례 모실 때 조상님께 고하도록 하고 시행한다.”

제사는 하동서 어머니가 지내실 때까지는 제관들이 얼마가 됐든 전통대로 했었다. 4대까지 각 위마다 기제사를 지냈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모셨다.

10여년 전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제사를 넘기면서(?) 부부별로 합사를 하도록 ‘개혁지침’을 내려주셨다. 몇 년 뒤에는 증조부모와 고조부모를 합사토록 조치를 취하셨다. 어머니는 9위의 제사를 모셨지만 아내의 봉제사는 3회로 ‘배려’받았다. 횟수가 줄어도 변하지 않았던 게 밤 11시 제사였다. 도시에서 제사를 지내는 다른 집안들이 초저녁에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바뀌고 따라서 제사날짜가 바뀌는 것이 못내 찜찜했었다.(초저녁에 제사를 모시면 날짜를 하루 늦춰야 맞다)

제사를 준비하는 아내가 원했다면 바꿨을 일이었다. 그런데 ‘제사를 모실 바에야 제대로 격식을 지키는 게 맞다’는 게 그녀가 내세우는 이유였다. 2차 제사개혁을 불러온 것은 뜻밖에도 큰누이 시집이 유지하고 있는 제사문화의 전근대성에서 촉발된 점도 있었다. 하동에 계시던 어머니가 지난주 금요일 갑자기 척추쪽의 고통을 호소하셨고, 결국 서울로 모시고 올라와야 했다. 때마침 큰누이가 제사를 앞두고 있어서 몸을 빼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가 됐었다. 농촌에 사는 큰누이네는 어머니가 지내던 수준의 제사문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이야깃거리가 됐고 우리 제사를 한번 더 현실화토록 하는 반면교사가 됐다.

밤 11시 제사는 아파트형 제사일 수는 없다. 제사를 지낼 때마다 밑엣집에 신경 쓰이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집 밑에는 은퇴한 노부부가 산다. 초저녁 잠이 많을 노인들에게 밤11시 넘어 들리는 소음은 여간 예민한 일이 아닐 것이다. 제사를 마치면 12시가 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짧은 잠을 자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충도 보통일은 아니다.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시간상 제삿밥도 먹지 못하고 헤어진다는 사실이다.

조상 모시기를 너무 편하게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없지 않다. 초저녁에 제사를 모시고 음복하고 제삿밥도 나눠 먹고 참여자들 간에 대화라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조상 모시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또한 명절 차례는 예전 방식대로 모시고 있으니 잘 봐달라고 빌어볼 참이다.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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