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걷기 길 복제상품’의 ‘원조시비’
쏟아지는 ‘걷기 길 복제상품’의 ‘원조시비’
  • 경남일보
  • 승인 2013.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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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고문)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걷기열풍에 휩싸인지 오래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유명한 관광지의 걷기코스가 사계절 관광상품으로 온 국민의 발길을 집단으로 끌어모았다. 한국에 걷기 열풍을 몰고온 제주 올레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6년 전인 2007년 9월이었다. 30여년 동안 언론인으로 맹활약했던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뜻있는 사람들과 성산읍에 제1코스를 만든 것이 시초로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 후 웰빙 바람에 상술까지 가세, 걷기의 상품화를 이끌었다. 제주 올레길이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볼거리 위주의 제주 이미지를 단번에 변화시켜 젊은이를 포함해 다양한 연령층에게 주목받는 여행지로 만들어 놓았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국내외 탐방객은 갈수록 늘고 있다.

‘복제·짝통 콘텐츠’ 식상할 수밖에 없다

어느 지역을 가건 이웃 마을로 놀러가던 마실길, 나무하러 가던길,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길 등이 남아 있다. 자동차, 열차, 비행기 등 빠른 교통수단이 생기면서 잊히고 사라졌던 그 길을 다시 찾고 있다. 걷기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제주도 올레길의 성공 때문이었다. 지자체는 물론 중앙정부까지 나서 경쟁적으로 걷기 좋은 길이 조성됐다. 계속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걷기 길이 만들어 졌다.

국도 시·군비가 일부라도 투입된 길만도 전국에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국비 지원 없이 해당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조성한 길까지 합치면 그 수는 엄청날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을 넘어 난립수준으로 치닫는 ‘걷기 길 전국’이 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상품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 그만큼 신선도가 떨어지는 법이다. 그만큼 관광객도 분산, 경제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독특한 체험을 원하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복제·짝통 콘텐츠’는 식상할 수밖에 없다.

특히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상큼한 향이 물씬 풍겼다. 편백나무가 줄을 지어 하늘 높이 쭉쭉 벋어 마치 병정들이 사열하는 것만 같다. 수목 중에서 피톤치드 함유량이 가장 높다는 편백나무숲이다.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는 학설이 있다. 아토피, 천식 등 호흡기 질환에 음이온과 더불어 최적의 자연치유로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가슴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해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어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 진다.

슬로시티나 올레길 또는 옛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음식도 슬로푸드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다. 자연의 품속에서 느리게 걷고자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나는 여행은 늘 설렘이 앞선다. 느리게 걷고 싶을 때 숲에 들어서면 삼림욕으로 몸과 마음을 적시는 순간이다. 꽉 짜여진 일상을 훌훌 털고 가벼운 마음으로 피톤치드에 풍덩 빠져보기 위해 걷기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

걷기 길 열풍에 따라 전국적으로 짧은 기간에 많은 길이 만들어 지면서 대부분이 기존의 길과 같은 ‘붕어빵 일색’이라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실제로 길을 걸어보면 유사상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는 말도 한다. 거창한 홍보문구만 믿고 현장에 갔다가 ‘짝퉁에 속은 걷기 길이란 느낌’이라는 말을 터뜨리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심지어 ‘걷기 길 복제상품’이 쏟아지면서 어떤 지역은 ‘원조시비’까지 붙을 정도다. 벌써부터 일부지역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애물단지로 전락한 길도 허다하다.

‘사후약방문식’이지만 그 대책 서둘러야

고유의 역사와 문화, 삶의 향기가 흐르는 길이 아닌 무작정 남 하는 대로 베끼다 보니 초래한 결과가 사태났다. 마치 걷기 길 만들기가 ‘친구 따라 강남 가다가 혈세만 낭비한 꼴’이다. 먹거리와 지역 상품을 팔면서 주민소득과 연계하고 있는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등의 진짜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단순한 등산로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길 등의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길과 연관된 인문, 문화, 역사 등의 이야기를 발굴하거나 아이디어를 동원해 관광객에게 알리는 명품의 의미를 부여하면 걷는 기쁨이 더해진다. 사후약방문식이지만 이제라도 그 진화의 대책들이 서둘러 시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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