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경남문단, 그 뒤안길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72)<33>김상훈 시비와 거창문인들(3)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7.20  16:36:28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72)
<33>김상훈 시비와 거창문인들(3) 
 
거창 출신으로 김상훈 이후 문인으로는 전기수(全基洙, 1928-2003) 시인을 들 수 있다. 전시인은 거창군 거창읍 송정리 964번지에서 태어났고 돌아가고 난 뒤의 장지는 거창 북상면 선영이다. 고등학교 교원검정시험에 합격하여 1947년부터 교육계에 투신했다는 기록을 볼 뿐 그 사이 학력이나 이력사항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표성흠 시인도 그 부분이 답답한 사항이라고 말하고 있다. 거창에서 전시인과의 선배나 후배관계가 잡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찍이 출생지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만 말한다.

전기수 시인이 돌아가기 직전 출판사 일로 교류가 있었던 오하룡 시인은 교단에 서기까지의 이력사항은 신상철 교수에게서도 얻어 들은 것이 없노라고 말하고 있다. 전시인의 마산고등학교 제자로 김복근 회장이 있는데 그쪽으로 알아보라는 힌트만 주고 오시인은 경남도민일보에 실었던 ‘영결사’를 참고하시지요, 하고는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복근 회장에게 전화를 넣고 “지금 산이지요?” 했더니 그렇다는 것 아닌가. 부지런한 시인으로 랭킹에 들어가는 사람답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 부분은 저도 별반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대신 산에서 내려가는 대로 전선생님에 대해 에세이로 적은 토막글이 있어서 이메일로 보내 드리지요.”하는 것이었다.

이러는 중에 필자가 부지불식간에 제도권 이력에 매여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시 쓰는 사람이 학력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오히려 학력이 시상에 진로방해가 되기 십상이다, 하고 한 두 번 말한 것도 아닌데, 필자 자신이 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전기수 시인은 교사가 된 뒤 1959년 월간 ‘현대문학’에서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 사이 시집으로 ‘기원’, ‘잔설’, ‘봄편지’, ‘남해도’, ‘밤바람에게’, ‘전기수 시선‘, ’사절의 노래‘, ’속 사절의 노래‘, ’산하‘와 수필집 ’산골의 봄‘, ’2인 수상집‘, 마지막으로 낸 ’전기수 산문집‘이 있다.

전시인은 현대시인상을 수상하고 좀 늦게 경상남도문화상을 받았다. 그리고 배대균 원장이 출연해 제정된 경남문학상을 제1회로 받았다. 1994년 교원 정년때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필자는 전시인을 한 두어번 만난 일이 있지만 속엣말을 꺼내놓고 이야기할 만한 교류가 없었다. 진주에서 열린 개천예술제 백일장에서 한 번 만났는데 리명길 시인과는 교분이 있어 보였고, 이월수 시인에게는 친근감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필자와는 15년 연상이라 중학교 재학중일 때 진주농고 교사를 지냈다고 했으므로 가까이 하기엔 부담스러웠다. 그 시절 월남한 시인 김세익과 같은 학교 교사로 있었다고 말한 것이 어슴프레 기억선에 오른다.

전기수 시인은 진주를 떠나 진해여고, 마산고교, 김해여고 등 창원 김해권 교사로 평생을 지냈으므로 별반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필자가 경남문인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경남문학’에 권두비평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는데 그때가 1993년쯤이었을 것이다. ‘깃들이기와 일깨우기’라는 제목으로 전기수의 신작 5편(경남문학 27호)을 평한 바 있었다. “간밤에 내린 눈이/ 상사목 돌밭에서 희끗 희끗 얼비치어/ 실개울 물소리 사분거리며/ 소나무 푸른 빛은 아슴푸레 눈을 뜨고/ 살구꽃 봉오리 볼그무레 입술 열면/ 산새는 마른 나뭇가지에서/ 그 언제 봄볕이 찾아들겠느냐고/ 그 언제야 봄날이 돌아오겠느냐고/ 애달프게 애달프게 울어대었다”(‘꽃샘하는 날’전문)

필자는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사족을 붙였다. “시인은 꽃샘추위 그 자체의 분위기에 깃들이고 있음을 본다. 말하자면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봄날이 한사코 빨리 오기를 고대하고 있지 않음을 본다. 간밤에 눈이 내려 돌밭에서 희끗거리는 것이 좋고 물소리 사분거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물아일체라든가 자연몰입이라든가 하는 말이 이러한 자연친화의 경지를 두고 일컬어지는데 이런 경지의 장점은 군더더기 없는 서정과 탈속적 아취에서 이뤄지는 어떤 격에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래서 더분 더분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것일까. 터놓고 지냈던 사람이 극소수였던 것일까.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