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귀향 그리고 뒤안길
화려한 귀향 그리고 뒤안길
  • 경남일보
  • 승인 2013.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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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미래촌 아이童長)
조선시대에는 한양 벼슬이 끝나면 곧장 자기 고향으로 내려갔다. 자기수양을 하며 후학을 가르치며 마을 어른이 되어 고장을 빛냈다. 귀향하는 일이 자랑이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도시와 농촌의 선순환이었다. 잠자고 있던 농촌문화를 일깨운 것은 그나마 이런 귀향 활동에 있지 않았을까.

모처럼의 문학기행에 따라 나선다. 팔순이 넘은 선배 한분이 당신이 태어난 고향 산골에 문학관을 세우고 초청을 했으니 같은 문우끼리 응원차 문학기행을 다녀오자 한다. 그곳에 가서 하룻밤을 지새며 그분의 뜻을 담아 오자 한다.

20여호가 남아 있는 원터마을이다. 버스가 집 마당에 서고 문학관 앞에서 우르르 내린다. 2층 건물 앞에 ‘ㅇㅇ문학관’이란 현판을 걸어 놓고 시비(詩碑)도 세워져 있다. ‘이 깡촌에 이리 번듯한 당신의 문학관을 짓다니 대단합니다, 축하합니다.’ 모두 일제히 감탄한다. 바닥면적 30여평인 1층에 손때 묻은 수만권의 장서를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바로 이곳서 태어나 초등학교, 중학교를 마치고 외지로 나가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 가서 벼슬을 끝낸 후 80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관을 지었다. 고향에 뿌리를 박고 쑥쑥 자라 세상의 동량이 되었다가 다시 뿌리로 돌아온 화려한 귀향이 감개무량이다.

선배가 고향에 정성을 다하지 않았다면 이 마을사람들이 귀향을 받아주지도 않았을 터이고 이런 환대를 받기는 애시당초 어려운 일이다. 지금 농촌사람들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겪어 본 사람들의 얘기다. 평소 마을사람들과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어려운 일은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 주니 선배의 ‘공덕비’가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여기 있다.

현실로 돌아온 문우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이걸 어떻게 관리하지, 무슨 돈으로 운영하지, 돌아가신 후에 누가 맡아 하지?’ 화려했던 귀향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들이다. 선배가 담담한 심정으로 토로한다. 자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해냈는데 그후는 당신도 모르겠단다. 다행히 친척분 중에 당장 이곳 일을 도울 젊은 분이 있어 큰 의지가 되고 있다. 이 촌구석에 있는 문학관을 찾아 이용하실 분이 얼마나 있을까. 항온·항습으로 장서를 관리하고 도서목록을 작성해 운영해야 하는데, 그 일손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더하여 몸놀림이 여의치 않은 노부부만 있으니, 차 없이 병원 갈 일이 까마득하다. 도시에서는 외출할 때 대중교통이라도 이용하면 되는데 이 촌에서는 마을 밖 외출에도 차 없이는 힘들다. 차를 버릴수도 없고 껴안고 있을 수도 없는 딱한 실정이다.

화려한 귀향길 뒤에 이렇게 어두운 그림자가 있어 혼란스럽다는 말씀에 가슴이 아리다. 함께한 문우들의 부러워했던 눈길이 차츰 짙은 염려로 바뀐다. 자신의 꿈이 이뤄지지 않음을 후회하지 않고 위안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김만주 (미래촌 아이童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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