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도 미관인가?
전봇대도 미관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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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 건축학과 교수)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아름다운 도시와 지역 풍광에 연신 매료되곤 한다. 특히 산 위의 고성에서 내려다보는 오래된 중소도시의 통제된 절경은 연신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또한 주변의 자연 및 환경과 조화되거나 대비를 이루어 그 품격이 한층 더 드러나 보인다.

통일성을 이루는 것은 건물의 높이뿐 아니라 색상이나 건축 재료들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색상계의 팔레트를 연상하게 하는 재료선택과 색채구성이 ‘어떻게 이렇게 잘 꾸며 놓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게도 한다.

매력적인 풍광을 보여 주는 것은 작은 도시뿐만 아니라 런던, 파리, 프라하 같은 대도시도 마찬가지이다. 파리는 방산선형의 공간구조와 수려한 건축물로 소위 위풍당당한 장엄한 도시의 전형적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이에 비해 역시 대도시인 영국의 수도 런던의 구도심은 마치 마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아름다운 도시 및 마을 경관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특히 18세기 이후부터 민간에도 유행한 도성도나 민속마을과 전통 도시구역에서는 자연과 인공건조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수려한 풍광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의 도시경관이 통일성과 지역성을 잘 가질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제왕이나 교회 등의 절대권력이 관 주도에 의한 하향식의 개발을 진행함으로써 질서 정연한 도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발 논리는 주민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가능하였다. 또한 교통수단의 미발달로 지역의 건설전문가가 지역의 건설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지역특징이 자연적으로 반영되었다. 이 외에도 도로는 최대한 마차규모에 맞춤으로써 인간 척도에 알맞은 구조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질서는 산업혁명 이후에는 급격히 변화되었다. 도시는 자동차가 주도하게 되었고, 인구유입으로 인한 도시 과밀화와 환경의 피폐에 몸살을 앓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소위 ‘국제주의’ 건축은 전 세계의 도시들이 동일한 형태의 현대적 도시경관을 가지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획일적이고 자동차 중심의 도시경관에 대한 반성은 1970년대 이후에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는 인간중심의 도시공간 재현, 문화적 성향의 도시 창출, 전통과 지역성 강조, 친환경 도시건설, 도시 마케팅, 도시재생사업 등을 염두에 두었다.

최근 우리도 ‘경관법’ 제정 등을 통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올해 개정된 경관법에서는 경관심의와 경관위원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기초단체의 경관사업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관사업은 관의 주도로만 이루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시민계급이 성장했으며 새로운 경제체제인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도시는 복합성과 융합성을 띠고 있어 단순하고도 획일적인 경관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전처럼 단순한 높이 제한이나 지나친 통일성을 강조한 경관은 현대도시에서는 지양해야 한다.

특히 문화재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관이 동결되는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 변화의 역동성을 가지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전에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지역의 자랑이었던 전신주가 오늘날에는 경관의 해악적 요소로 변화된 것을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이 때문에 문화재 주변의 일정범위의 경관을 이와 동일시하거나 동결하려고 하는 지나친 해석도 경계해야만 한다.

이처럼 경관은 시대성과 장소성 등의 복합성을 가지면서도 지역민의 인문·사회·역사적 가치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도시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유구한 역사와 경제기적을 일구어 낸 우리의 독특하고도 수려한 21세기의 경관 창출을 기대해 본다.
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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