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고향에 가고싶다
우리도 고향에 가고싶다
  • 최창민
  • 승인 2013.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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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민 (경제문화체육부장)
남해연안 갈사만 섬진강 기수지역에 당도했을 때 고향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어떤 것인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바다의 짠물이 아닌 민물을 만나면 고향냄새가 직감적으로 몸에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첨단 GPS가 없어도 고향으로 갈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초능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연안에 올 때까지 힘이 많이 들기도 했다. 짠물 투성이인 바다를 헤엄쳐 건넜고, 태풍 속을 헤치기도 했다. 옆에 친구들이 있어 힘이 솟기도 했다. 희생도 있었다. 이번 귀향에서 나보다 살이 쪘던 한 친구는 재수가 없었다. 우리보다 크고 빠른 놈이 쏜살같이 다가와 친구를 덥석 물어버렸다. 친구는 그놈의 밥이 됐고 나는 그친구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꼬리가 잘렸다. 다행히 헤엄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무리의 끝에서 서로 격려하고 악전고투하며 잘 따라왔다.

그래도 섬진강에 닿았으니 이제부터 고향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우선 이곳에서 몇 달간 머물생각이다. 민물에 맞게 체질을 바꾸고 배도 채워 체력을 안배해야 한다. 아무리 민물이라도 센 물살을 거스를 때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배불리 먹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생존이유인 종족번식을 위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야 한다.

내게서는 냄새가 난다. 사람들은 그것을 수박냄새라고 말한다. 이 냄새는 내가 고향을 조금 빨리 알아내기 위한 생존수단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수박냄새 풍기는 내가 맛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를 잡기 위해 수단방법 안 가리고 득달같이 달려든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 좋다. 맛있다니 썩 기분이 나쁘진 않다. 어차피 알 낳고 새끼치면 나는 자연으로 돌아갈 몸이니 그건 아무래도 좋다.

복병을 만났다. 섬진강가에 당도했을 때는, 귀향이 쉬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전라도 구례가 고향인 친구들은 섬진강에서 낚시하는 사람들만 조심하면 큰 장애 없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나 청학동이 고향인 나는 횡천강을 거쳐서 가야해 좀 피곤하다. 아니,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가기가 힘들게 됐다.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시멘트로 물길을 막아 댐을 쌓았기 때문이다. 댐이 한두개정도면 내 주특기를 살려 ‘공중으로 날아서’라도 가겠는데 댐이 수십개가 돼 힘이 부친다. 또 벼 병충해 때문에 사람들이 농약을 엄청 뿌려대던데, 격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직감적으로 알았던 고향의 냄새가 잘 안 난다. 이러다간 영원히 고향엘 가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벌써 이탈하는 친구도 있다. 꼬리 잘린 친구는 나와 동향인데 “부상으로 힘들다”며 다른 친구를 따라 물살이 약한 구례로 가버렸다. 거기서라도 알을 낳겠단다. 소문에는 청학동 가는 길에 높이 100m가 넘는 하동호가 보수공사 뒤 더 높이 쌓아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눈치 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은어다’. 사람들은 전문 용어로 ‘모천 회귀성 물고기’라 부른다. 육지 동물 중 여우란 놈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한다고 하던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갸륵하긴 하다. 그러나 생각해봐라. 나는 고향에 돌아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끼까지 치고 죽으니 솔직히 여우란 놈보다 고향사랑이 더 한 것 아니냐.

참!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우리하고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연어 형을 부산 낙동강 앞에서 만났는데 난리가 아니더라.

34년만에 고향 밀양엘 찾아간다고 엄청나게 자랑하더라. 뭐, 밀양이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본향이라던가.

그들이 고향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가상한 노력이 있었단다. 밀양 연어는 그동안 낙동강 하구언 둑이 막혀 귀향을 포기하고 살았는데 사람들이 2009년부터 낙동강하구 수문을 열어줘 ‘고향엘 가게 됐다’고 하더라.

이제 본심을 말할게, 부탁인데 “우리도 고향 가는 길을 좀 열어주라.” 반말이라서 기분이 나쁘다면 다시 말할게 “우리도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길을 좀 열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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