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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등에 지고 선비 남명을 품은 산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80>산청 구곡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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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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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남부능선은 세석고원에서 석문바위, 삼신능선을 거쳐 삼신봉에 이르는 구간을 말한다. 하지만 남부능선은 이 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천왕봉 동쪽 써레봉에서 내원골과 순두류계곡 사이 맥을 형성해 남쪽으로 흘러 국수봉을 거쳐 구곡산까지 닿는 20여km구간이 있다. 이렇게 50리길을 굽이쳐 달려온 능선은 마지막 구곡산에서 일어섰다가 덕산 넓은 들에서 자취를 감춘다. 이를 대개 황금능선이라고 부른다. 세석산장 관리인이었던 정원강 옹이 1979년 직접 산죽밭을 베어내 등로를 개척했고, 이후 가을 해질녘 구곡산에서 이 능선을 바라보면 햇빛을 받은 산죽의 마루금이 황금처럼 빛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진주에서 국도를 따라 산청 지리산 방향으로 가다가 덕산 들녘부근에서 고개를 들면 정면에 버티고 선 산이 구곡산이다. 그 뒤에 영산(靈山) 지리산이 호위무사처럼 서있다.
산 꼬리가 들로 잠영한 덕산은 ‘금가락지가 떨어진 터’라는 ‘금환락지(金環落地)’로 이름이 났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돌아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길지를 말한다. 구례의 운조루, 곡전재가 대표적인 금환락지 명당이다.
풍수지리에서 금환락지는 금거북의 땅 ‘금귀몰니’, 5개의 보석을 일컽는 ‘오보교취’와 더불어 3대 명당으로 꼽는다.
덕산 명당에 명사의 유적이 있다. 일평생 벼슬을 마다한 채, 타락하고 무기력한 지식층에 경종을 울리며 ‘선비 정신’을 실천한 남명 조식(曺植, 1501~1572)의 유적이다. 산천재를 비롯해 덕천서원 남명기념관 산소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구곡산은 삼신봉과 함께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특정한 위치에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면 천왕봉에서부터 서남쪽으로 제석봉 장터목대피소 연하봉 촛대봉 칠선봉 덕평봉 벽소령 연하천 반야봉 노고단까지 고산준령의 장쾌한 파노라마가 이어진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리영산의 웅혼한 포스가 느껴진다.
▲구곡산은 시천면 원리 동당리, 삼장면에 위치한다. 높이 961m. 글자 그대로 아홉 굽이가 있어 구곡산이라 한다. 지역민들은 아홉산이 라고 하며, 계곡을 뱀거리먼당이라고 부른다. 정상에는 지역의 한 산악회가 ‘이 산은 우리 산이다’며 세운 정상석이 있다.
▲산행은 산청군 시천면 덕천서원 옆→ 도솔암→계곡갈림길(오른쪽길) 범바위 골→능선(삼거리)→구곡산 정상→헬기장 →도솔릉 안부 갈림길(왼쪽 하산)→와룡폭포·바위→계곡 갈림길(회귀)→도솔암→덕천서원으로 원점회귀 한다. 10.5㎞에, 시간은 4시간, 휴식 포함 5시간 내외다.
▲들머리는 남명조식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던 덕천서원이다. 늙은 은행나무가 서원 앞에 서 있다. 수령 430년이니 남명시절에는 없었고 수년 뒤 심은 것으로 보인다.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덕천서원은 조선중기 남명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76년 문인들이 덕산서원으로 세워졌다가 임란 때 소실 후 1602년 중건됐다. 훗날 덕천서원으로 개칭한 뒤 강우 48가의 본산으로 유림을 영도했다.
서원 왼쪽 ‘원리 1반’ 표석과 ‘구곡산 등산로 5.02km’ 이정표를 따라 마을 안길로 오른다. 한참동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면 다시 아스팔트 길, 다시 시멘트포장도로를 걸어 도솔암 이정표까지 간다. 왼쪽 기이한 나무 아래를 지나고 원만스님이 건립했다는 도솔암교를 건넌다.
출발 30여분 만에 도솔암 앞 갈림길에 선다. 왼쪽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고즈넉한 산길이다. 이른 아침 파란하늘에 구름이 떠가는데 뜬금없이 싸락눈이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아 녹아 별 사탕 같은 달콤함을 전해준다.
발밑에는 눈이 낙엽을 덮어 겨울이 닥쳤음을 알린다. “세월 참 빠르다”.전날 과로한 탓인지 초췌한 얼굴로 나선 동료 산우의 한 마디가 가슴 속을 파고든다. 그래, 벌써 올해 달력이 달랑 한장 남았다.
‘돌∼돌’ 흘러내리는 왼쪽계곡은 시천면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고 있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으나 맑고 청량하다.
출발 1시간 만에 계곡을 만나고 곧 갈림길이다. 왼쪽으로는 능선에 올라선 뒤 헬기장을 지나 정상에 가는 코스인데 2.3km가 되고, 오른쪽은 정상까지 2.15km가 된다.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은 오른쪽 길을 택한다.
드넓게 형성돼 있는 산죽밭에도 눈이 내려 앉아 있다. 초록이 갈색으로 물들고, 낙엽이 지고, 그 위에 눈까지 내리는데 불과 1달이라는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1시간 30분 만에 능선에 올라선다. 뒤로 금환락지 덕산들녘이 내려다보인다. 진양호로 흘러드는 덕천강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덕산마을과 들녘이 위치하고 있다. 들에는 겨울영농의 대명사격인 비닐하우스가 빼곡하다.
전망이 트인 두번째 능선에 올라서면 지리산이 조망된다. 며칠 전부터 내린 눈이 산의 7부능선서부터 정상까지 장악하고 있다. 구름 때문에 주릉이 보이지 않았지만 구름의 형상에 따라 늠름한 자태의 산세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구곡산 정상에 와우산악회가 설치한 정상석이 눈길을 끈다. 수년전 이 돌덩이를 이고 지고 올라 이곳에 설치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 산은 우리 산’이라고 자랑했다한다.
남명은 두류산에 10여차례 올랐다. 1558년(명종13)기행문 유두류록을 남겼다. “무거운 종은 세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찌하면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리지 않을까”라고 했다.
남명집에 기록된 을묘사직소 이른바 ‘단성소’는 그의 강직함을 드러내는 명작 중 명작이다.
/임금이 나라 일을 잘못 다스린 지 이미 오래돼 나라의 기틀은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떠났으며 백성들의 마음 또한 멀어졌습니다/큰 고목이 백 년 동안 벌레에 먹혀서 진이 다 말라버렸으니 언제 폭풍우에 쓰러질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중략)낮은 벼슬아치는 아랫자리에서 술과 여색에 빠져 있고 높은 벼슬아치는 윗자리에서 거들먹거리며 뇌물을 받아 재물 모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오장육부가 썩어 온 나라 형세가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습니다/(중략)신은 깊은 시름에 탄식만 나올 뿐이며 낮이면 하늘을 우러르기를 수차례였고 눈물과 한숨을 누를 길 없어 밤에 잠 못 이룬지가 오래입니다/문정왕후께서는 신실하다하나 구중궁궐 과부에 불과하고…/(중략)임금으로서 원칙을 세우십시오. 원칙이 없으면 나라답지 못합니다/
수차례 벼슬길 나오기를 거부하자 조정에서는 1555년(명종 10년) 55세의 남명에게 다시 산청 현감 벼슬을 내린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한 답으로 이처럼 단성소로 일갈한다.
구곡산에서 석고처럼 서서 지리산을 바라본다. 장쾌하다. 오래된 과거 남명의 두류산, 골골마다 맺힌 이념 갈등의 현대사, 피의 전장, 그리고 가까운 과거 개인적으로는 거기서 호흡하며 뒹굴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감동이 밀려온다. 그 산 너머에서 부는 북풍은 지리산 주릉에 부딪치면서 차가와진 뒤 구곡산에 닿아 귓불을 아리게 한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건 눈이 부신 까닭인지 감정이 북받쳐서인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아∼뭣해요! 빨리 안 오고, 배도 안 고푸남∼” 때마침 뒤통수를 치는 일성이 카랑카랑하다. 흠칫 자리를 털어낸다.
정상에서 도솔릉을 타고 10여분정도 이동하면 헬기장
이 나온다. 숲이 울창하나 나뭇잎이 없어 좌우로 전경이 조망된다.
도솔릉 끝자락 못 미쳐 안부 삼거리에서 내려서면 응달에 쌓인 눈이 발걸음을 잡아끈다. 급경사 눈길은 게걸음이 제격. 안부에서 30여분 정도 더 하산하면 계곡을 다시 만난다. 시린 계곡물 한 모금에, 헤적 헤적 하산 길이 경쾌하다.
와룡폭포가 나온다. 벤치가 있는 휴식공간도 마련돼 있다. 수량이 적어 폭포의 위세는 없어도 여름 장마철이면 산을 울리는 폭포다.
도솔암. 노승은 곶감을 손질하느라 산행객의 인기척까지도 모르는 듯했다. “안녕 하세요” 인사말에 무거운 고개만 들었다 내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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