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비차(1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비차(1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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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 이무기를 죽이다
한편, 조운이 밤낮 궁금해하는 충청도 그 아이도 여느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신분이나 환경이 같지 않은 조운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그들이 어떤 인연을 맺게 되리라는 그 탁발승의 예언부터가 허랑했다.

그 충청도 아이는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기억력이 좋을 뿐 아니라, 영리하고 재주가 넘치는 귀재로 소문이 나 있었다. 또한 잣밭마을 정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는지, 뿌리가 깊고 줄기가 곧은 잣나무같이 기골이 장대하였다.

세상에는 비록 몸집은 커도 여자같이 심약한 사내도 있는 법인데, 그 아이는 큰 덩치에 걸맞게 병정놀이를 즐겼으며, 또 언제나 대장이 되어 또래들을 부하로 부렸다. 이웃마을 아이들과의 전쟁놀이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많은 아이들이 들끓었다. 항상 제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며 지내는 조운과는 영 딴판이었다. 충청도 아이가 일찌감치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호걸풍이라면, 경상도 아이는 자신을 남들 앞에 나타내기 싫어하는 은둔형이라고나 해야 할까.

여덟 살 때 일이다. 충청도 아이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길가에서 동네 아이들을 거느리고 병정놀이를 하고 있었다. 대오(隊伍)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진(陣)은 실제로 한창 전투 중이거나 야영을 하는 군사가 머물러 둔(屯)을 치는 곳처럼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그런데 하필 그때 천안의 사또를 태운 행차가 그곳을 지나갔다. 앞쪽에서 원님을 모시고 있던 수행원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무섭게 외쳤다.

“이놈들! 썩 길을 비키지 못할까? 뉘 행차시라고 조무래기들이…….”

그 시퍼런 서슬에 화들짝 놀란 아이들이 여름날 졸지에 소나기 만난 개미떼같이 뿔뿔이 흩어지려 할 때였다. 그들 가운데 군계일학처럼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 하나가 다른 한 아이에게 시키기를,

“한 고을 사또가 감히 진중을 통과할 수는 없다고 일러라!”

그러자 막 길 옆으로 물러서려던 아이가 홀연 호기롭게 소리 질렀다.

“우리 대장님 엄명이오! 진중을 비켜 지나가시오!”

순간, 행차를 호위하고 있던 자들이 진노한 얼굴로 곧바로 달려들어 아이들 뺨이라도 후려칠 기세였다. 길가에 선 나무들과 길 위에 뒹구는 돌멩이들도 잔뜩 몸을 움츠리는 것 같았다. 그 아슬아슬한 찰나에 사또가 말에서 내리며 명했다.

“모두들 뒤로 물러서도록 하라.”

수행원들은 약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지만 복종하지 않을 수 없어 엉거주춤 옆으로 비켜났다. 하지만 사또를 경호하는 태세만은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사또는 대장이라고 불린 아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은 물론, 지나가다 그 현장을 보고 멈춰선 행인들도 마른침을 삼켰다. 엄청 위험한 공기가 감도는 속에 이런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이제 저 아이를 끌고 가서 물고를 낼 것이야.”

“아무리 철이 없다기로서니 저런 짓을 하다니?”

그런 가운데 대장아이 바로 앞까지 가 선 사또는 잠시 말없이 아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 표정이 굉장히 복잡해 보였다. 어쩌면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당장 그 자리에 꿇려 앉힌 다음 매로써 다스리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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