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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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 이무기를 죽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람들의 그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사또는 한 손으로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큰 재목이로고! 네 이름이 무어냐?”

그러자 대장아이는 조금도 당황하거나 굽히는 기색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응했다.

“김시민(金時敏)이라고 하옵니다.”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은 아이의 목소리였지만 늠름하고 신뢰감이 전해졌다.

“김시민? 김시민이라.”

사또는 그 이름을 마음에 새기듯 하더니,

“허, 사내가 목청 하나 커서 좋다. 가히 산을 무너뜨리고 강을 가를 기상이로다. 그래 춘부장 존함은 어찌되는고?”

대장아이는 차렷자세로 고했다.

“김 자, 충 자, 갑 자, 쓰시는 분이 제 부친이옵니다.”

“무어라? 김충갑?”

사또 얼굴에 놀라는 빛이 확 살아났다. 음성도 덩달아 흔들렸다.

“아, 그러면 지평공(持平公)이 아니시더냐? 역시, 역시! 왕대밭에 왕대 나고 쑥대밭에 쑥대 난다는 옛말이 과연이로구나!”

사또는 다시 한 번 대장아이 머리를 어루만져주고는 수행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모두들 한쪽으로 비켜 지나가도록 하라.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면 아니 될 것이야. 흐음.”

어른들은 아이들 놀이터를 밟을세라 신경을 쓰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아직도 눈앞의 일이 믿어지지 않는지 다시 발을 옮겨놓으면서도 얼떨떨한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나무들은 잎사귀를 살랑거리는 게 한숨 놓았다는 기색이었다. 구름 한 조각 둥실 떠가는 하늘이 부쩍 높아 보였다. 날아올라 뛰어들면 물속같이 자맥질을 할 수 있을 성싶었다.

대장아이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은 점점 멀어져 가는 원님 행차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때 아이 하나가 놀란 듯 대장에게 말했다.

“대, 대장! 사또 행차가 바로 가지 않고 대장 집 쪽으로 가고 있어!”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걱정스런 낯빛으로 대장을 쳐다보며 한 마디씩 했다.

“혹시 대장 아버지께 가서 아들 죄를 따져 물으시려는 게 아닐까?”

“맞아.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무례한 짓을 했다고.”

“아, 이 일을 어쩌지?”

한참 듣고만 있던 대장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 조금도 염려할 것 없어.”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아닌데…….’ 하였다. 대장아이는 여전히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낮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우리 진중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늙은 여종을 거느리고 바깥나들이를 나온 양갓집 고명딸같이 보이는 어린 규수가, 그런 대장아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바람에 살짝 날리는 귀밑머리 아래 드러난 귓불이 유난히 희고 탐스러웠다.

아이들은 입을 모아 대장아이더러 병정놀이를 더 하자고 했고, 대장아이는 짙은 눈썹을 모으며 수성군(守城軍) 장수처럼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어느 누구든 우리 진중을 넘보게 할 수는 없게 만들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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