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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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 이무기를 죽이다
그러자 대장 명령을 받고 사또 행차를 향해 소리쳤던, 얼굴이 무같이 길쭉한 아이가 아까처럼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대장 최고다, 최고!”

그게 신호탄이었다. 모두 대장아이를 빙 에워싸고 팔을 창이나 칼처럼 치켜들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최고 대장님, 우리 대장님, 만세!”

“우리는 대장님을 영원한 우리 대장님으로 모실 것을 맹세하노라!”

“대장님만 있으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한창 그렇게 열띤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 원님 행차는 좌우 협문을 끼고 세 칸으로 구성된 솟을대문과 담장으로 둘러진 대장아이 저택 앞에 당도하였다. 말 위에 올라앉아 묵묵히 그 집을 바라보던 사또는 혼잣말로,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집터가 장차 큰 인물을 배출할 지기(地氣)를 품고 있어.”

목청이 우렁우렁한 수행원이 사또에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다. 사또가 말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닐세. 그냥 나 혼자서 해본 소리라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불쑥 방문한 사또를 맞이한 충갑이 놀라 물었다.

“아, 어인 일이신지요? 이 누추한 곳을 찾아주시고…….”

사랑채에 든 사또는 충갑과 마주 앉자마자 대뜸 말했다.

“지평공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자제분을 두셨소이다. 어쩌면 그렇게 대범할 수 있는지 정말 부럽소이다.”

충갑이 걱정스런 표정을 풀지 못하며 또 물었다.

“혹시 부족한 게 많은 제 자식놈이 무슨 잘못이라도……?”

테두리가 녹색으로 둘러진 다홍색의 연꽃 문양 비단 방석에 앉은 사또는 크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이다, 아니오이다. 하하. 실은…….”

사또는 짧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 듣고 난 충갑은 몹시 민망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허, 이 일을, 이 일을 어쩔꼬?”

뒷마당으로 난 미닫이창 아래에 놓인 오동나무 문갑 위에 얹혀 있는 연적과 필통도 주인처럼 그 자리가 불편한 것같이 보였다. 충갑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여 보이며,

“사또! 이 사람 낯을 보시어 부디 제 자식놈 허물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놈은 제가 즉시 불러서 따끔하게…….”

사또는 조금 전 이씨 부인이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로 가만한 미소와 함께 내놓고 나간 찻잔을 들어 잠깐 입만 축인 후에 찻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붉은 입술을 천천히 열어 말했다.

“본관은 지평공께 치하를 드리고자 온 것이외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충갑으로선 통 이해가 되지 않을 소리였다. 그런 철따구니 없는 짓을 했다는데. 하지만 사또는 자못 대견스럽고 감탄한 빛으로 말했다.

“허허. 더 들어보시구려. 무릇, 진(陣)을 치고 놀이를 함은 그 지기(志氣)가 보통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며, 관장(官長)을 꾸짖어 말에서 내리게 함은 그 기운이 참으로 두렵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게지요. 또한, 그 모양이 웅걸(雄傑)하니 이것은 곧 전정(前程)이 만 리와 같다, 말하자면 나이가 아직 젊어서 큰 희망을 걸 만한 장래가 있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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