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재 (문학박사,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그렇다면 이런 결과를 초래한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나를 속이기 위한 행동을 취한 경우라면, 그것은 법적 조처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자신에 대한 낭패감은 덜할 것인지라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자신이 스스로 자기의 눈에 속아서 그렇게 된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해도 하소연할 데가 없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우는 까마득한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짐작컨대 공자도 살아가면서 그런 경험이 적지 않았는지 후대 사람들 참고하라고 ‘사람 보는 방법’을 논어에 남겨 두었다. 공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 사람이 평소에 무슨 짓을 하는지 보라(視其所以). 그 사람이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지 나쁜 일을 많이 하는지 잘 살펴보라는 뜻이다. 둘째,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뭔지 살펴보라(觀其所由). 그 사람이 평소에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좋은 일을 하고 다닌다 할지라도 왜 그렇게 하는지를 잘 살피라는 말이다. 겉으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시점에 겉모습만 보고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똑같이 ‘보라’고 했지만 앞에서는 ‘그냥 보라(視)’고 한 반면에 두 번째에는 ‘살펴보라(觀)’고 한 것이다. 셋째, 그 사람이 과연 그 일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지 세심히 살펴보라(察其所安). 그 사람이 선한 일을 하고 그 의도도 좋은 데에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그 일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않아 그 마음이 변하기 쉽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지를 파악하는 데는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세심히 살펴보라(察)’고 한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하면 누가 나를 속인단 말인가?”라는 말로 이 대목을 끝맺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말이 “아, 속았구나!”이지 “아, 속였구나!”가 아닌 것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속았다는 것은 남의 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의 불찰에 기인한 것이라는 뜻이다.
김익재 (문학박사,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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